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날 Sep 12. 2022

소중한 월급으로 누리는 행복

취향

“나 월급 더 받아야 돼…” 주말에 집에서 수업 준비 등 학교 일을 하다 보면 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부족하다 느껴서 더 소중한 월급으로 누리고 있는 행복들을 소개해본다.


1. 이건 돈 좀 드는 행복 - 피아노와 필라테스

  일주일에 두 번. 돈 좀 드는 취미 활동을 한다. 첫 번째 취미는 피아노이다. 3년 전, 집 근처 학원에서 재즈 피아노를 배운 것이 그 시작이었다. 코로나로 잠시 중단했다가 올해 재개했다. 요즘은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는데 악기로 음악을 표현해낸다는 게 멋있다고 느껴지는 취미 활동이다.

  한 번은 피아노 선생님이 “새날 씨는 온 힘을 주고 피아노를 치고 있어요. 모래알 집을 땐, 모래알 집을만한 힘만 쓰면 되는데, 물이 가득 담긴 세숫대야를 옮기는 것 같은 힘을 써요.”라고 하신 적이 있다. 피아노 연주에 대해 하신 말이지만, '일상에서도 저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나' 뜨끔했던 적이 있다. 들켰다. 가끔 퇴근 후, 연습실에 가는데 피아노를 치다 잠 들것처럼 피곤하지만, 좋아하는 걸 하고 있단 생각에 뿌듯함이 느껴진다.


  또 다른 취미는 필라테스이다. 기구 필라테스는 다양한 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해서 지루하지 않다. 필라테스 스튜디오 벽면에 거울이 있어서 운동하는 내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는데, 나는 운동 신경이 부족한 편이라 거울 속 내 동작이 조금만 그럴듯해 보여도 엄청 뿌듯해진다. 이런 면에서 필라테스는 들이는 노력 대비 큰 성취감을 얻는 취미이다.

  가끔 필라테스 선생님이 “잘했어요”하고 칭찬해주실 때가 있다. 애쓰는 수강생에 대한 격려 차원인 것 같을 때도 있고, 진짜 동작을 잘 해내서 칭찬해주시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어찌 됐든 나는 필라테스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싶다.


2. 이건 돈이 덜 드는 행복 - 생활용품 및 문구류 사기

  학교에 있을 때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더 좋게 하는데 조금씩 돈을 쓰고 있다. 알게 모르게 내 돈이 어딘가로 새고 있다면 아마 여기도 한 몫할 거다. 예를 들어 나는 출근 직후, 커피 마시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이 시간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드립백을 사기도 하고 그런다. 요즘엔 이상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땡겨, 얼마 전 얼음 틀을 샀다. 드래곤볼 크기의 동그란 얼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틀을 골랐는데, 커피가 빠르게 시원해지면서도 얼음이 쉽게 녹지 않아 만족스럽다. 꽁꽁 언 얼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시고 있으면, 그날 하루는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석이 많이 필요하다. 교무실 비품으로 구비된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의 동그란 자석도 있지만… 지인으로부터 강아지 모양의 자석을 선물 받고 난 후부터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귀여운 자식을 또 하나 알아버려, 자석을 간간이 사고 있다. 여행지에서 산 자석(혹은 엽서)으로 교무실 내 책상의 한 부분을 꾸며 놓으면, 회색빛 교무실 칸막이가 좀 생기 있어 보인다.


  요새 온라인 쇼핑몰은 귀신 같이 내가 사고 싶을 만한 물건들을 잘 추천해준다. 어느 날은 ‘찢었다’, ‘이걸 해냄’, ‘이건 안 되네’와 같은 간결하면서도 잘 쓸걸 같은 문구가 새겨진 칭찬 도장을 추천해주길래 사버렸다. 사고 난 후 자주 쓰진 않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 스스로에게 이런 거 찍어 주면 기분이 훨씬 낫다. 세상에는 귀여운 문구류가 참 많다.


3. 이건 돈이 안 드는 행복 - 좋아하는 날씨에 사진 찍기와 브런치 글쓰기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요즘은 비가 자주 오고, 비와 함께 사고 소식도 들려서 그런지 비 오는 날이 별로 안 좋다.) 아무튼 우리 학교는 지대가 높아, 학교에서 동네 풍경을 내려다보기 좋은데, 비 오는 날엔 특히 경치가 좋아, 비 오는 날이면 풍경 사진을 찍는다. 학교 귀퉁이 쪽, 아이들이 잘 찾지 않는 쉼터에서 짬을 내 회색 빌딩 건물이 비에 젖은 것도 구경하고. 빗소리도 듣고. 핸드폰으로 풍경 사진도 찍는다. 맘에 드는 사진 하나 건지면 행복하다.


  브런치에 글쓰기는 올해부터 시작한 취미 활동이다. 말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글 쓰는 건 좋다. 글을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었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브런치 피드에 쌓이는 글을 보면 뿌듯하다. 또 어디서 어떻게 살고 계신진 모르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을 읽어주시는 분들. 또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브런치가 아니었으면 머릿속을 헤매다 끝났을 생각들이 한 편의 글로 완성되고, 이걸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게 참 글쓰기를 즐겁게 만든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 Steve Jobs





"Connecting the dots."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축사 내용 중 한 부분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말이고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적어서 더 소중한 월급으로 나는 내 인생의 점들을 열심히 찍고 있다. 잠깐 찍었다 지워버린 점도 있고 계속해서 그 크기를 키우고 있는 점도 있다. 상상력의 한계로는, 좋아하는 것을 모두 때려 합쳐 ‘경치 좋은 시골에서 커피숍과 문방구 같이 하며 거기에 피아노를 가져다 놓는 것(?)’과 같은 요상한 결과물이지만… 작게는 취향, 좀 더 명확하게는 취미로 내가 찍고 있는 이 점들이 언젠간 놀랍도록 연결되길. 나와 나의 주님이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림으로 완성되길 기대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