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날 Sep 13. 2022

매일 있는 과제라면 힘을 빼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도록(수업 준비 편)

수업 준비는 힘들어. 교사가 되어 첫 직장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은 세상엔 정답이 없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내게 있어 정답 없는 문제 중 최고난도 문제는 '수업'이다. 교과서라는 틀이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는 교사에게 달려있다. 어떤 내용을 강조해 다룰 것인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수업 면에서 주어지는 자유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있었던 나는, 그동안 수업 준비의 늪에 빠져 허덕였다. 애써 수업 준비를 했지만 아무리 준비해도 준비에 부족함을 느꼈고. 그 느낌은 자신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철저한 준비로 한껏 빡빡해진 내 수업은 교사와 학생들을 모두 괴롭히고 있었다.


내향적인 교사. 내게 있어 수업은 부담감과 스트레스였다. 발표를 싫어하는 대학생이 매일 발표 과제를 해야 하는 상황. 싫어하는 발표 과제를 하나 끝내면 그다음 발표 과제가 기다리는 딱 그 느낌이었다. 앞선 글들에서 고백했듯이 나는 교사를 그만 두려다가 안 그만두기로 했는데,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 전, 수업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했다. 수업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덜 받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나만의 기준. 생각해보니, 수업은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길을 잃고 고생하지 않으려면 내가 바라는 수업의 기준을 미리 정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정한 기준에 맞추어 끝이 있는 준비를 해나가는 접근이 필요했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숨 쉴 틈이 있길 바랐던 나는 수업에 대한 기준을 '하나’라도 준비해 알려주는 것으로 정했다. 여기서 강조점은 '라도'가 아니라 '하나'에 있다. 진짜 중요한 것. 아니면 아이들이 몰랐던 것을 하나만이라도 잘 알려주면 된 것이라고 정했다. 교과서의 질은 갈수록 좋아져 아이들이 집중해서 교과서를 몇 번만 읽어본다면, 그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때문에 빡빡한 수업으로 아이들이 내가 가르치는 과목에 질리게 하지 말고. 정말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 ‘하나’라도 잘 가르쳐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숨 쉴틈을 주기로 결정했다.


내려 놓기. 수업에 대해 달라진 점이 또 있다면, 아이들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으로 강의 시간을 줄였다는 것이다. 요즘은 45분 수업을 ‘20분 강의 + 20분 활동 + 5분 정리’의 틀로 진행한다. 20분 강의에는 학습 내용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고, 배운 내용을 활용한 심화 학습으로 활동을 시킨다. 열심히 자료를 찾든, 생각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이 많이 움직일 수 있도록 활동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인구 분포에 대해 가르칠 때, 이전에는 인구 밀집 지역과 인구 희박 지역은 내가 제시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났는지부터가 아이들이 생각할 과제였다. 그런데 이제는 여러 지역의 인구 밀도를 직접 계산하는 것부터 그들의 과제다.


후기. 강의 시간을 줄어드니 목을 보호할 수도 있다. 또 활동 시간에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으로 역할이 축소되어, 숨 고를 틈이 생겼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진 시점에 힘겹게 강의를 이어가며 더불어 힘겨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모둠 활동을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는 게 심적으로 훨씬 편안하다. 요새는 수업하러 갈 때, 의식적으로 복도에서 숨을 고르려고 노력한다. 바삐 걷던 그 걸음 그대로 교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교실 도착할 즈음에 걷는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른다. 편안한 상태로 교실에 들어가면, 보는 아이들도 편안하지 않을까 싶다. 잠시 숨을 고르면, 들어가자마자 튀어나오는 예상치 못한 질문(오늘 같으면 “선생님 추석 때 뭐하셨어요?”)에도 여유를 가지고 영혼 있는 대답을 할 수 있다.






 첫 학교에서 수업 준비의 늪에 빠져 힘들어할 때, 중년의 국어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매번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수업을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쉽게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애들이 무언가를 여지를 안 주는 것 같아요.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판서를 너무 안 하는 것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때마다 선생님은 내게 동일한 말씀을 해주셨다. “정답은 없어요. 선생님이 하는 수업에선 선생님이 전문가이니까 자신감 가지고 하면 돼요. 선생님이 하는 방법이 맞는 거예요.”


  정답 없는 문제가 많은 직장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중이다. 정답 없는 문제에서 나만의 기준을 정해보고. 사람마다 다양한 기준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나아가 시험 문제에서 모두 정답 처리는 출제 오류이지만, 인생에서 접하는 문제들은 어떤 경우에 모두 정답 처리가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한다.


   수업으로 왠지 힘들 때마다 누군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겠다는 쓸데없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새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새라면, 뭔가 날개 빼고는 불필요한 힘을 전부 빼야 훨훨 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싶다는 마음 빼고는 전부 내려놓고 수업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남은 2학기 화이팅!

작가의 이전글 소중한 월급으로 누리는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