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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Sep 17. 2022

수업 시간에 벌이 들어오면

"밖에 눈이 많이 오는 관계로 오늘 야간 자율학습은 여기서 마치고 학생들은 안전하게 하교하기 바랍니다."


"와아아아!!!!!"


고등학생 때였다. 3월에 내린 함박눈으로 야자가 중단되고 귀가하라는 방송이 교실에 나왔다.

동시에 여러 교실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수업하러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무겁다. '가기 싫어...'


"선생님 오늘만 수업 안 하면 안 돼요?" 유혹하는 목소리.


"너희 반이 제일 진도가 느려서 안돼", "오늘 안 하면 다음에 더 많이 해야 돼"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달래서 한창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실에 벌이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크기가 엄청나다. 비명 소리와 함께 몇 명은 자리에서 도망가고 그대로 멈춰 얼어버린 학생도 있다. 벌의 등장으로 한 순간에 교실은 엉망이 되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얼른 저 벌을 처리해달라'는 눈빛을 보내지만 나는 절대 저 벌을 잡을 수 없다. 이 교실에서 누구보다 저 벌이 무서운 사람 중 한 명이다.


"창문 열어!”


아랫줄에 위치한 창문만 겨우 열어본다. 벌은 고도를 낮추지 않고 자꾸만 닫힌 윗줄 창문에 몸을 부딪히고 교실을 넓게 휘젓는다. ‘제발 저 벌이 나가게 해 주세요.' 기도한다.


벌이 윗줄 창문에 몸을 부딪힌 찰나, 한 남학생이 윗줄 이중 창의 바깥 창문을 닫아버렸다. 벌은 갇혔다. 일단 상황 종료. 이대로 안쪽 창문을 열어 주면 벌이 쉽게 나가겠지만… 교실이 4층이라 아랫줄 창을 통해 손을 바깥으로 뻗어 윗줄 창을 열기가 위험하다. 벌에 쏘일 수도 있다. 여기서 만족하고 수업을 마저 한다.


이어지는 모둠 활동 시간. 여전히 갇혀있는 벌을 보던 한 학생이 말한다.


"다음 시간 뭐지?"


"역사"


"저 벌 나가면 안 돼. 저 벌 있으면, 수업 시간 줄어들어"


"개이득"


수업 시간에 벌이 들어오면 개이득인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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