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햄릿은 정말 위대한가?

by 나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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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


문학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름 “햄릿”.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설의 형태가 아니라 희곡 형식으로 되어 있어 쉽게 손이 가는 글은 아니다. 고전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꼭 한 번쯤은 읽어야 할 작품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큰 고민 없이 책을 펼쳤다.

“햄릿”을 검색해 보면 찬란한 서평들이 쏟아진다. “간단하지만 완벽한 한 마디로 시작하는…”, “가장 대중의 사랑을 받은…”, “햄릿은 비겁하지 않다…” 등등. 비판적인 글은 오히려 보기 힘들다. 나는 문학 전공자도, 평론가도, 전문가도 아니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오히려 많은 호기심과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햄릿”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찬사를 받을 만큼 대단한 작품인가?


세상은 흘러간다. 100년 전의 과거는 곧 200년 전의 과거가 될 것이고 1000년 전의 기억은 언젠가 2000년 전의 이야기로 묻히게 된다. 하지만 지식의 뿌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문다. 학생들은 여전히 프로이트를 배운다. 학교에서는 셰익스피어를 가르치고 교회에서는 수백, 수천 년 전 쓰인 성경책을 통해 그들만의 지혜를 깨우친다. 그렇다면 50년 후는 어떤가. 100년 후는. 우리는 여전히 지금의 고전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배우고 있을까? 그때쯤이면 새로운 연구, 새로운 책, 새롭게 집필된 역사가 지금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존재할 것이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 누군가가 완성도 높은 책을 써내고 해마다 새로운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이나 공쿠르상을 받는다. 지식은 매일같이 발전하고 변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400년 전의 문학을 최고의 고전이라며 읽고 또 배워간다. 마치 오늘 처음 발견한 것처럼. 마치 지금 쓰인 글인 것처럼. 과연 “햄릿”은 진정으로 잘 쓰인 문학인가, 아니면 역사가 만들어낸 허구의 명작인가.


햄릿에 나오던 성차별적 표현들이 남성을 향했던 것이라면. 햄릿의 신앙이 애니미즘이었다면. 햄릿이 백인이 아니었더라면. 셰익스피어가 백인이 아니었더라면. 오필리아가 남성이었다면. 거트루드가 왕이었더라면. 햄릿이 여성이었더라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읽힐 가치가 있는가. 셰익스피어는 아주 오래전에 죽었다. 그와 함께 그의 시대도, 그의 세계관도, 그의 문학도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물론 고전은 시대를 넘어선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여전히 존중받을 만하다. 그러나 고전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거스르고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눈을 흐리게 만든다. 더 이상 낡은 틀 안에서만 위대함을 찾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목소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문학 역시 시대와 함께 숨 쉬고 성장해야 한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위대한가? 누구를 위한 문학인가? 그리고 지금, 우리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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