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바라본 세상 | 두 번째 이야기
“엄마 2월 21일 저녁에 꼭 엠넷을 봐야 해! 그래도 되지?”
“왜?”
“그 날 BTS 컴백 공연하니까!”
코로나19로 뒤숭숭한 시기였지만, 다행히 딸은 신이 났다. 요샛말로 ‘하이텐션’이랄까? 이제 막 십 대라 부를 수 있는 나이가 된 딸에게 소위 ‘오빠들’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리곤 자칭 ‘아미(ARMY)’가 되었다.
처음엔 “아미? 프랑스어로 친구(amie)를 말하는 거겠지?” 했더니, 이제 막 영어를 조금씩 공부하던 딸은 “아니야! A.R.M.Y. 아미야!”라고 스펠까지 집어서 강조한다. 아니, 친구가 아닌 군대라고? 그래서일까? 전 세계의 아미들은 똘똘 뭉쳐있는 듯하다.(너무 꼰대스럽나?) 물론 찾아보니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라는 좋은 뜻의 약자이긴 하다. (하지만 군대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고 원뜻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게 되면서 내 나이를 새삼 느끼게 된다. 라떼 버전으로 말하자면, 예전에 H.O.T. 의 이름을 어른들에게 설명해주던 시절이 상기되었다.)
(아무튼!) 아미들은 코로나 19로 인해 BTS의 콘서트가 취소되자, 이에 항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환불받은 티켓 값을 기부를 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3월 7일 현재 5억 원이 넘는 금액을 달성하고 있다. 이들은 BTS가 준 기쁨을 세상에 선한 영향력으로 보답하고 있는 것이다. [김화평, “BTS 한 팀이 외교관 100명 몫... 국익 기여 '팬슈머' 경제”(프라임경제, 2020.3.6.,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no=496132)]
자칭 아미이지만, 아직은 콘서트에 갈 수 있을 정도의 나이는 아니기에 딸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서 열심히 BTS의 공연을 보고 춤을 따라 추고 노래를 부른다. 요즘은 다양한 책도 나와서 열심히 탐독 중이다. 글 밥이 제법 많은 책도 BTS ‘오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열심히 읽고 심지어 노트 정리에 PPT까지 만들었다. 말 그대로 덕후다. 그나마 개학은 연기되었고, 학원도 쉬고 있는 이 시점에 딸이 알아서 덕질을 하며 즐겁게 지내니 BTS에게 고마울 지경이다.
그러다 며칠 전 그동안 모은 것이라며 얼마의 돈을 내민다. 청소나 심부름을 도와주면 500원, 1000원씩 용돈을 주었는데, 그것을 차곡차곡 모았나 보다. 그러고는 BTS 앨범을 사고 싶은데 인터넷으로 사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곤 인터넷에서 찾은 쇼핑몰 페이지를 보여준다. 네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진 이번 앨범 중 고심하여 고른 하나를 선택했고 그것을 대신 주문해줬다. 당연히 모은 돈은 받았다.
딸이 구입한 앨범을 구경하면서, 개인적으로 깜짝 놀랐다. 이것은 네덜란드 정물화 ‘바니타스(Vanitas)’를 컨셉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이런 걸 찾아내는 것은 일종의 직업병이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것이다. 검은 바탕 속에 극사실적으로 과일과 음식, 악기와 유리, 꽃 등을 그린 것이다. 이 정물들은 금방 깨지거나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맛있고 아름다운 절정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거기에 앉아있는 일곱 명의 BTS는 그토록 아름다운 피조물이라는 것일까?
하지만 아쉬운 눈초리였다. 네 가지 중 하나를 골랐으니 나머지 것들이 눈에 밟힐 테다. 한참을 저금통과 지갑, 가방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돈 더 모아서 ‘아미봉(팬인 아미들이 공연을 볼 때 사용하는 일종의 응원도구)’을 것을 사겠다며 아쉬운 마음을 추스른다.
BTS는 빌보드 차트에 여러 번 오르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 공연도 연일 매진되며, 해외 스타들도 이들을 좋아하며, 급기야 2020년 새해가 시작되는 순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공연을 하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록을 새롭게 세우고 갱신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평가와 기대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하지만 아미가 된 딸과 BTS의 노래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딸이 보는 방송을 기웃하면서 느낀 것은 이들의 음악과 태도가 가지는 진지함이 그저 가벼운 유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보다 이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는 더 깊어졌고, 자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함께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페르소나>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등의 가사를 보면 거창하진 않아도 자신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하고자 하는 고민을 엿볼 수 있다.
BTS의 모든 노래들을 다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 소양이 깊진 않다. 다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BTS의 노래들은 대부분 거대한 이야기보다는 자신을 소중히 하고(Love yourself) 70억 지구인들이 각자 자신의 소우주(Mikrocosmos)를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하는데, ‘세계의 평화’나 ‘거대한 질서’와 같은 거대담론이 아닌, 우리의 하루가 어떤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메시지는 1990년대부터 철학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던 담론이며, 현재는 더 이상 개인이 대의를 위하여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론으로 연결된다. 또한 수많은 현대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모든 게 궁금해 How’s your day
Oh tell me
뭐가 널 행복하게 하는지
Oh text me
so 머리맡에 두고 싶어 oh bae
Come be my teacher
네 모든 걸 다 가르쳐줘
...
세계의 평화 (No way)
거대한 질서 (No way)
그저 널 지킬 거야 난
나는 저 하늘을 높이 날고 있어
..."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중
이제 막 아미가 된 딸도 아직은 작은 소녀이지만, 언젠가 BTS처럼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이들의 노래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BTS의 선한 영향력이 조금 더 오래갔으면 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또 다른 소우주인 타인을 인정하며, 대의보다는 서로의 힘을 모아 아미처럼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말이다. 더불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로 인하여 답답하거나 불안해하는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이 시기를 잘 이겨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은 BTS 공식홈페이지(https://ibighit.com/)와 멜론매거진에 게시된 것들입니다.
“7 그리고, 방탄소년단 : COMEBACK방탄소년단이 있는 곳에 내가 숨 쉬게 하소서 -ON복음 7장 7절”(멜론매거진 2020.3.4., https://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10099&ref=W1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