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원죄와 오늘의 자랑_한국에의 부끄러움과 자부심

마흔에 바라본 세상 | 일곱 번째 이야기

by NaRio

장면 1_

“얘들아 웃긴 이야기 하나 해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던진 질문이었다.

“얼마 전에 선생님이 미국에 여행을 갔다 왔는데 말이야.

외국 다녀왔으니,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사야 하잖아?

그래서 고민 끝에 ‘성조기’가 그려진 볼펜을 여러 개 샀어.

그런데 돌아와서 보고 놀랐잖아.

볼펜 한 구석에 ‘Made in Korea’라고 쓰여 있지 뭐야!

어디 가든 싸구려는 다 한국산이야. “

아이들은 모두 웃었다.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래 한국산은 싸구려야.

madeinKorea.jpg

장면 2_

“너 워크맨 뭐 살 거야?” (*워크맨(Walkman):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쏘니랑 아이와 중에 고민이야.”

“울 엄마가 삼성도 좋대!”

“웃기지 마, 누가 그거 사냐?”

중학교 시절, 누구나 테이프가 들어가고 오토리버스 기능도 되는 워크맨을 갖는 것은 꿈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듯이. 여러 회사 제품 중 다들 소위 말하는 일제를 선망했다.


워크맨.jpg


장면 3_

“아빠, 난 대학교 들어가면 한복 입고 다니고 싶어요. 개량한복! 요즘 그거 입는 사람들 있대.”(*개량한복: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개화기 때부터 선각자들의 개화사상이 표출된 간소화된 한복이 개량한복”이라 한다. 지금은 ‘생활한복’이라 하지만 당시엔 그렇게 많이들 이야기했다.)

“안 돼. 그런 거 입고 돌아다니면 학생 운동하는 사람으로 의심받아!”

“힝. 난 한복 너무 좋은데....”

고등학교 시절, 대학에 들어가 교복을 안 입어도 되면 가끔은 생활한복을 입고 다니고 싶었다. 한복은 보기에도 예쁘고, 입은 사람도 편하기도 하니 평상시에도 입으면 너무 좋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돌+아이이거나 민중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마흔 된 아줌마의 기억 속 세 장면에서 대한민국은 후진국이었다.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 대학에서 만난 한 두 살 밖에 차이 안 나던 선배들도 매번 “한국은 이래서 안 돼”라는 자조 섞인 잔소리를 늘어놨다. 우리는 항상 한국이라는 작고 힘없는데 그나마도 분단되어 있는 희망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원죄로 생각해야 했다.


당시 ‘Made in Korea’는 지금 ‘Made in China’ 정도의 위상이었고, 대부분의 제품에서는 한국 제품이란 것을 숨기려 노력했다. 일제 전자제품은 부의 상징이었고, 쏘니 사는 영원히 망할 거 같지 않은 회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일본 도요타사의 사장이 쓴 주인이 된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책을 읽었고, J-Pop은 잘 나가는 아이들은 누구나 즐기는 문화였다. 한국적인 것을 아껴야 한다는 것은 공익광고의 공허한 외침이었고, 통일신라의 화려한 영광은 석굴암에서 찾고 조선의 영광은 세종대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한국은 선조들의 영광을 되살리지 못하는 무능력한 후손들이었다. 그리고 그 무능력을 극복하려면 일본과 서구의 것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전통적인 것은 박물관에만 넣어둬야 했다.


그런데 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2002년 월드컵 때 광화문 광장,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시기, 이때를 지내온 사람들은 누구나 추억 한 자락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입고 있던 “Be the Reds!”티셔츠, 뉴스를 연일 수놓는 광화문 광장의 붉은 물결들, 축구경기가 있는 날에는 온 나라가 들썩였다.

2002년은 대학생 때였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학교의 큰 강의실에 학생들이 다 몰렸고, 운동장에서도 경기를 봤다.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안고 학교 밖으로 뛰어나오면, 이미 거리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모든 건물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모두 “짝짝짝! 짝~짝~”하는 자다가도 튀어나오는 박수를 쳤다. 차를 가진 사람들은 군중 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차 위에 올라가 달라 하고, 마치 뭐에 홀린 듯 사람들은 차 위에서 같은 박자로 쿵쾅대었다.

붉은색 옷, 붉은 두건, 붉은 물결과 태극기.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도 충분한 색이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붉은 옷을 입었다고 더 이상 “빨갱이”가 아닌 것이다.


월드컵.jpg 2002 FIFA 월드컵 국민 응원 인파(한국-이탈리아), 출처: e영상역사관


붉은 옷, 머리에 맨 두건, 한복을 입은 젊은이 그리고 10명 이상 모여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건, 소위 “빨갱이”라 불릴 수 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2002년에는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버렸고, 심지어 가슴엔 ‘치우천왕’ 즉, 전통의 신, 즉 도깨비의 얼굴을 박고 다녔다. 그리고 2015년 지자체와 경복궁 등 문화재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무료로 입장시켜주면서 한복을 입는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해외에서도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킹덤>을 통해 외국인들이 ‘갓’을 비롯한 조선의 다양한 모자에 열광을 하고 있다 한다. 그리고 핼러윈 코스튬으로 스스로 한복과 갓을 구매해서 입는다고 한다. 한복 입은 외국인들의 모습은 명절 때 방송에서 하는 외국인 노래자랑에서나 나오던 모습인데 이제는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구해서 입는 신기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킹덤.jpg 넷플릭스에서 2020년 3월부터 서비스를 한 킹덤 시즌2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이렇듯 예전엔 금기였던 붉은색과 한복이 이제는 누구나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되었다는 것이, 돌아보니 다시금 놀랍다.


요샛말로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미국 팝뮤직을 더 수준 높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 J-Pop을 쫓아 머리와 옷까지 따라 꾸민 사람들, 샹송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한국 가요야말로 세계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는 K-Pop이란 말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인기 있는 가수들은 시쳇말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으로 수식되거나, 홍콩이나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국가로 진출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유럽이나 미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는 가수들이 생기더니 급기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리고 2020년 새해에 타임스퀘어에서 B.T.S. 가 공연을 했다.

정말 잊을 수 없이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종로의 보신각에서 종을 치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다른 나라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공연에 참여하다니...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B.T.S. 를 위한 ‘한글’로 된 응원도구를 들고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의 모습이었다! 비단 B.T.S. 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에서 공연을 한 것에만 놀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인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외국인들이 따라 한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말마따나, 미국 역시 로컬(local)이다. 그러니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에서도 우리 것을 이해하고 좋아한다는 명확한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잘 모른다. 그래서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제 미국인들이 한국의 것을 보려 하고 있고, 이를 통해 알고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각 세대마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건이 다르고 그에 따른 특성도 다르다. 그중 70년대와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나와 유사한 사건을 공유한다고 했을 때(흔히 옛날에 X-세대라 불렸던 이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라 본다. 어린 시절에는 화상통화는 꿈도 못 꿨지만, 지금은 자식들의 온라인 수업을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부심을 함께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항상 잔소리처럼 한국인인 것을 부끄러워야 했고 영어 이름도 반드시 지어야 했다. 왜냐하면 서양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 이름은 국제화시대에 맞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제 외국인들이 되려 한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려 노력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의 감독을 호명할 때 ‘봉.준.호.’라 또박또박 불렀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프랑스 방송의 아나운서가 우리나라 ‘강경화’ 장관을 이름을 ‘경화-강’이 아니고, ‘갱화, 갱’도 아니고 ‘강.경.화.’라 똑똑하게 불렀을 때 놀라웠다.


한국인임을 애써 숨겨야 했을 때에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시대, 이 두 세대를 경험하면서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안심이 된다. 우리 아이에게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고 한국문화가 얼마나 훌륭한 지 그저 객관적으로만 이야기해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 억지로 ‘신토불이’를 외치지 않아도, 전 세계가 한국인이 그리고 한국문화가 훌륭한 지를 증명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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