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바라본 세상 | 여섯 번째 이야기
요즘 온라인 강의/수업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화두 중 하나다.
낯선 온라인 환경에서 일어나는 교수님들이나 학생들의 실수담은 연일 온라인 개그 소재가 되고,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대해 푸념과 한숨을 늘어놓고 있다. 웹페이지가 접속이 안 되었다는 기사는 연일 나오고, 학교에서는 전화를 자제해달라는 앱 알림장을 보낸다.
나는...
2008년부터 디지털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올해는 개강을 못하고 있는 다른 대학에서 3월 셋째 주부터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4월 16일부터 초등학생 딸아이의 온라인 개학을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육 개월 정도 온라인으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온라인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다. 최근 최대의 온라인 플랫폼이 된 유튜브(YouTube)의 경우 2008년 1월에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1990년대부터 웹캠을 모니터에 달고 소통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온라인을 통한 소통 경험은 지금 30-40대에게도 생소하지 않다. 그 이전부터 보자면 TV를 통한 한국방송통신대학이 1972년에 개교를 했다고 하니, 원격교육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하여 급작스럽게 모든 분야에서 시작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많은 집에 디지털기기가 있고, 모든 대학에는 인터넷 설비와 컴퓨터 관련 학과와 전문가들(전공을 한 교수와 학생들)이 있고, 초중고 교육을 위한 EBS는 오래전부터 인터넷을 통한 교육서비스를 하고 있었으며, 학생들은 이미 ‘인. 강.’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사각지대도 많고, 급격히 늘어난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할 때도 있고, 애들이 잠옷 입고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게 불편한 학부모도 있지만,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를 보자면..
1. 온라인 강의를 하는 선생님 입장
처음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한 디지털대학교에서였다. 처음엔 PPT에 녹음만 하는 형태였고, 몇 년 후 촬영을 통해 학생들에게 얼굴과 제스처를 보여주며 강의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 미리 녹화 혹은 녹음하여 강의하는 방식이라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모니터 혹은 프롬프터만 보고 혼자 떠드는 것이 무척 어색했다. 하지만 하다 보면 이것도 익숙해져서 심지어 농담하고 혼자 웃기도 한다. 그런데 그때도 그렇고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얼굴을 모르는 학생들의 다양한 반응이다.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듣지 못했던 “교수님 좋아요.”, “수업 너무 재미있어요.”와 같은 좋은 이야기들을 온라인에서는 게시판을 통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실제로 만나면 하지 못할 말들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런 경우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처음엔 무조건적인 공격에 정말 당황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강이 미뤄진 또 다른 대학에서 실시간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화상 수업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 학교에서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것을 사용해달라고 했다. 문제는 처음 다뤄본다는 것이다. 보는 것도 처음이고, 사용해보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서 혼자서 테스트로 많이 해봤지만 결국 첫 수업 때는 실수 투성이었다. 다행히 착한 학생들이 많이 이해해주었다(고 나만 생각하는 건가?).
그런데 수업을 몇 번하면서 든 생각은 뉴스나 기사에서 보던 활발한 쌍방형 수업이 되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학생들의 얼굴이 다 나오고 서로 상황을 이해하며 활발히 토론하는 것은! 또 한 번 속게 된 환상 속 이미지였다(대중매체의 이미지엔 자꾸 속는다). 선생님인 나의 얼굴은 당연히 나가야 하지만, 학생들은 편안히 있는 모습과 자신의 방을 선생님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길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나도 이해가 된다. 나라도 싫을 거 같다. 그래서 얼굴 없는 학생들과 수업을 하지만, 다행히 중간에 기습 질문을 하면 채팅으로 열심히 답해준다. 고맙다 얘들아!
2. 온라인 개학을 한 초등학생의 학부모 입장
초등학생 딸이 4월 16일 온라인 개학을 했다. 그 전날 딸과 나는 시간표를 짰다. 오랜동안 집에 있었기 때문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초등학생에게 긴장감과 책임감을 줄 필요가 있었다.
8시 30분부터 일일 학습 안내가 올라온다는 공지를 받았지만, 분명 10시 정도까지는 접속이 몰릴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그 날 안에만 과제를 올리고 출석체크용 답 글을 달면 되기 때문에(다행인 지, 딸아이네 학교에서는 실시간 수업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집의 등교는 10시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9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옷 갈아입고 아침을 먹은 후, 10시에 수업을 시작하는 계획표를 짰다. 물론 아이는 어차피 집에 있는데 왜 양치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냐고 반발했지만, 그래야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 반박했고 다행히 먹혔다(육아는 협상의 연속이다).
4월 16일 아침이 밝았다. 아이는 9시에 일어나기로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8시 30분에 학교에서 사용하는 알림 앱에 들어가 봤다. 누르자마자 튕겨져 나오며 다시 로그인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심상치 않았다. 다시 로그인을 해서 들어가니 알림 내용을 누를 때마다 에러 메시지가 뜬다. 폭주 중인 거다. 그래서 딸아이의 수업이 이루어지는 ebs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역시 느리다. 에러까진 아니지만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9시가 되자,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났다! 온라인 개학이어도 긴장되긴 했나 보다. 약속한 대로 아침 준비들을 했고, 예상보다 빠르게 9시 45분쯤 모든 것을 마쳤다. 그런데 본래 등교(?)를 하기로 한 거실 한가운데 책상에 칸막이를 만들고 싶단다. 그러면서 박스를 달라하는데, 그만큼 큰 건 없었다. “방에서 할까?”하고 물어봤지만, 바로 “놉!”, 그러면 대안으로 텐트를 쳐보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이 대목에서는 오케이가 나왔다.
결국 간혹 집 안에서 놀 때 치던 텐트를 치고 학교 간판까지 만들어줬다. 딸아이는 텐트 안에 넣을 어릴 적 쓰던 상까지 야무지게 챙겨 오고 노트북을 연결하고 필기도구를 가져왔다. 그리고 10시 텐트 학교로 등교했다.
하지만 바로 부른다. “엄마!”
아직은 혼자 할 수가 없다. 1교시부터 5교시까지 해야 하는 내용들을 친절하게 선생님이 정리를 해두셨어도, 학교 다닐 때는 책상에 앉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지금은 자기가 스스로 보고 찾아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야 하는 구조다. 다시 말해 자율적 학습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 처하는 상황을 아이는 당황했다. 그래서 하기 싫다고, 안 한다고 할까 봐, 학부모로서 일일이 선생님의 공지를 확인하고 볼 동영상을 체크해주고, 해야 할 과제의 방향을 알려주고, 아이의 질문에 답해주면서, 결국 옆에 붙어 있어야 했다. 먼저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학부모들이 “학부모가 공부를 하게 되는 수업”이라고 한 게 이해가 된다. 그래도 그나마 엄마가 이렇게 붙어있을 수 있으니 다행이긴 한데, 도와줄 수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선은 아이가 얼른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지게 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나도 좀 숨을 쉴 테니.
3.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
온라인 강의를 하는 선생이자 학부모이면서, 또한 학생이기도 하다. 사실 대학 때부터 정규수업 외에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결혼 후 수도권 외 지역으로 내려오게 되고(아직도 지역엔 좋은 강의가 별로 없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의를 들으러 가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러던 중 한 선생님의 제안으로 근처에 사는 분들끼리 모여 같이, 온라인 철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각자 집에서는 의지가 약해질 수 있으니, 마치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처럼 함께 시간을 모여 들으면 강제성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유연하게 시간을 쓰고 집 근처에서 편안하게 들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모임이 없어졌지만, 얼마 전부터 늘어나는 중국 학생들과 조금은 소통하고 싶어서 중국어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고 있다. 사실 학원이나 개인교습 등을 많이 알아봤지만,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고, 개인교습은 금액도 그렇고 집에 선생님이 오실 때를 맞춰 준비를 한다는 게 부담되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것이 온라인 수업으로 들을 수 있는 학습지였다. 금액도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 번 화상으로 수업을 들으니 편했다. 간혹 너무 편해서 수업시간을 잊거나 바쁘면 숙제를 못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본 생활을 변경하지 않고도 가능했다. 다만 집에 인터넷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수업을 하는 도중 불편함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그저 일방적으로 수업을 드는 것보다는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있고 나에 맞는 진도를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집에서 하는 것이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리고 삶에서 우선순위도 밀려나는 단점이 있다. 이 부분은 결국 의지의 문제이긴 하다.
학생이자 학부모, 그리고 선생으로 온라인 강의를 겪은 후기를 간단히 적어보았다. 처음 느낀 것은 낯선 상황에서 오는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렇지만 익숙해지니 편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개인적인 상황이나 컨디션에 따른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요즘은 집 주변 복지관에서 하던 요가를 유튜브의 요가 채널을 보면서 하고 있고, 마트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장으로 보고, 배달앱도 활용하면서 집콕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이 더 생겼다.
더 이상 집에만 있다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전, 잠시 일이 없던 시절, 아이를 낳고 육아 우울증에 힘들었던 시절, 허리디스크로 나가기가 불편해 집에 있던 시절, 나를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들은 “집에서 좀 나가서 바람을 쐐.”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었다. 돈도 없고 나가서 할 일이 없어서 오는 무력감, 햇빛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우울감,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의 수고로움, 허리디스크로 밖에서 주저앉을까 봐 걱정한 두려움 등으로 문밖으로 나가는 건 너무나 큰 결심이 필요한 때였다.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 안 되니 나가야 한다는 죄책감이 컸다. 그래서 집에서 몇 시쯤 나가서 뭐 할까를 생각하는 게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랬나 싶다. 나갈 일 없으면 안 나가도 되는 데 말이다.
그래, 그렇다.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이제 이 상황이 너무나 익숙해져 간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뭔가를 해볼 수 없을까?”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보게 된다.
이렇게 코로나19는 나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