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홍대에 갔다. 홍대는 갈 때마다 사람이 북적이고, 모든 것이 새롭다. 나에게 익숙했던 가게는 이제 대부분 사라져서 더 이상 추억할 만한 하다고 싶은 공간이 없으나 도서관과 화방만큼은 예전 모습 그대로여서 이 두 곳을 찾을 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홍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특히 호미화방에 가는 날에는 조금 특별한 기분이 든다. 처음 그곳을 가보았던 건 국민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당시 언니가 홍익대학교 캠퍼스 내의 홍익여자중학교에 다녔는데, 종종 미술 준비물을 사러 갈 때 나를 화방에 데려가주었다. 동네에서만 놀던 내게 '화방'이라는 말과 너른 공간은 새로운 모험의 장소 같았다. 석채 물감, 석고상, 다양한 크기의 붓, 마커 등의 그림 재료들을 실컷 구경하고 나면, 계산을 마친 언니가 집에 가기 전에 ‘바른손’에 데려가 금다래 신머루 노트를 사주었던 것도, 이후에는 'afternoon'이라는 기프트숍에서 아기자기한 인형을 사주었던 기억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화방의 그림 재료의 코너와 코너 사이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마음속으로 어른이 된 것처럼 흉내를 내보기도 하고,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간혹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어른들은 수채화지나 판화지가 있는 지류 코너 앞에서 한참 동안 고민에 싸인 얼굴을 하다가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곤 했는데 그들을 남몰래 관찰하는 것도 어린이에게는 큰 재미였다. 화가의 고민을 엿보았을 때, 또 예쁜 팬시점에 다녀왔을 때에도 언젠가 나도 자라서 저런 고민의 무게를 가진 사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예쁜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자라서 십 대에는 친구랑 약속을 하면 만날 장소를 화방 안으로 정해두고, 그림 재료들을 실컷 구경하다 놀러 가곤 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언니 오빠들이 어떤 재료를 사가는지 관찰도 해보면서. 그래서 화방에 갈 때마다 꿈 많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를 데리고 재료를 사러 다녀왔다. 아크릴 과슈 코너에서 물감 색상을 고르는 동안 아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보챘다. 칭얼대는 어린이의 소리를 들으셨는지, 사장님이 다가오셔서는 "엄마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저쪽에 사장님이랑 같이 가볼까?"하고 시간을 벌어주셨다. 사장님의 배려 덕분에 알맞은 재료를 찾을 수 있었고, 계산을 할 때쯤 아이는 막대사탕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어린이였을 때에도 화방에서는 조용히 해달라거나, 물건을 소중히 다뤄달라는 주의를 받은 적이 없었다. 아이가 화방 구경에 흥미가 없었던 것이 아쉽긴 했으나, 우리는 사탕 하나로 즐거운 기분을 안고 돌아갈아 갈 수 있었다. 나는 사장님과 직원분들의 이러한 배려 덕분에 부모님의 지지가 없었어도 그림 그리는 삶을 꿈꾸는 일이 구김 없이, 늘 즐거웠던 것 같다.
내 평생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란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유년기에 좋은 기억을 담은 공간들이 있어주었던 것처럼, 운영하고 있는 ‘스튜디오 포카’도 들러주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추억과 기억의 장소가 되길 바란다. 검은 개 포카랑 어린이 마꼬를 그리는 소박한 나의 스튜디오에 호기심을 느껴줄 손님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가게를 열고,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