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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Sep 11. 2024

예체능의 세계 : 자취하는 10대 아이들

엄마 고향은 부산, 아빠 고향은 서울인데 카레는 그 중간인 충북에서 태어났다. 시민, 시청, 구민, 동사무소가 생활 용어였던 부모와 달리 카레는 도민, 군청, 구민, 면사무소를 접하며 자랐으니 오리지널 충북 토박이다.


카레가 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뜬금없이 "엄마, 농구 배우고 싶어."라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스쳐 가는 호기심 바람인 줄 알았고, 어렸을 때 무엇이든 체험하고 배워봐라는 마음으로 동네 클럽 방학특강반에 일주일 3회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대부분 부모 마음이 그렇겠지만 무언가 배우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낸 아이 의욕이 기특한 것도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카레가 스스로 배우고 싶었던 게 없던 건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피아노. 어릴 때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을 자극하여 두뇌 활동이 좋아진다, 의사들 취미 중 악기 연주가 많은 이유는 음악과 수학 두뇌 활동 영역이 같다,는 말을 들었던 터였다.


피아노를 친다고 의사가 될 순 없겠지만 내심 수학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었기에, 수학과 음악의 상관관계는 요상한 인과관계로 변형되어 내 마음속 저장☆. 무엇보다 '피아노 치는 남자'라니! 이미 꽉 찬 방과 후 스케줄 표와 씨름하며 겨우 피아노 일정을 욱여넣은 덕에 카레는 피아노 치는 감미로운 어린이가 되었다.


멜로디언으로 피아노 복습을 하는 카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자 피아노를 사주고, 그해 겨울 띵동 띵동 어설프게 캐럴 연주하는 영상도 학원 선생님께 받았지만 길게 가진 못했다. 연주가 어려워질수록 급속도로 카레 흥미는 떨어졌고 그 해가 지나기도 채 전, 스케줄 표에서 피아노 학원은 사라졌다.






농구는 피아노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고작 '방학 체험' 정도로 생각한 부모와 달리, '본격적인 진로'라는 행로로 포도가 스스로 정해버린 거지. 초등학교 3학년 5월, 포도초등학교 입단 테스트를 보고, 6월 전학을 오고, 12월 동계훈련을 가고, 해가 바뀌었고, 6학년 형들은 졸업하여 중학교로 진학하고, 카레는 4학년이 되었다.


함께 훈련받던 6학년 형들의 중학교 진학을 옆에서 지켜본 감회는?

'큰일 났다'.


여기서 잠깐. 포도초등학교 졸업생은 수도권 농구부로 진학한다. 그 지역 중학교로 진학하는 학교도 있지만 우리 학교는 '위쪽'으로 보낸다. 그래서 충북 교육계에 계신 어르신들이 별로 안 좋아하신다(ㅎㅎ). 안 그래도 지방 소멸이다, 뭐다, 인구 유입에 힘써도 모자라는 마당에 애들을 밖으로 빼돌리니 좋아할 리 만무하다.


포도초등학교는 연계 중학교가 없다. 대개 중학교는 연계 초등학교 선수를 받는데, 연계도 아니고, 위쪽 마을 입장에서는 청주와 충주도 헷갈리는데, 청주인가 충주인가에 있는 포도초 선수를 받는 것은 중학교 입장에서 이례적인 일일 것이다.


지역 사정, 연계학교라는 농구부 문법 등을 깨고 그럼에도 포도초 아이들은 서울로, 경기도로 '농구 유학'을 간다. 지역에서도 충분히 농구선수로 성장하고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겠지만, 아무래도 수도권이 인프라가 탄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내가 위로 가고 싶다고 그냥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당 학교에서 소위 '콜'을 해주어야 갈 수 있다.

  

아래는 2024년 1월 기준 초등학교 농구부 현황이다. 초등 때만 하더라도 전국으로 농구부가 포진해 있다.

초등학교 농구부 현황

 

아래는 중학교 농구부 현황이다. 지역에 있는 농구부 수가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연습경기가 곧 훈련인 농구부 입장에서는 다른 학교와 가까운 환경이 아무래도 도움이 될 것이다.

중학교 농구부 현황


삶의 터전이 수도권이라면 중학교 진학이 큰 이벤트가 아니겠지만, 우리처럼 지방에 사는 경우 고민이 된다.


첫째, 가족 모두 이주를 할 것인가,

둘째, 주말부부를 할 것인가,

셋째, 아이만 보낼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셋째, 아이만 보낼 것인가'라는 낯선 사항을 보고 기함할지 모른다. 처음에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이면 겨우 14살.


14살이 어떻게 혼자 지내지?

아니, 애초에 혼자 지낼 수 있는 나이인가?

혼자 지낸다는 명제 자체가 가능한 것인가?

24살에 독립한 나도 설거지며, 빨래며, 식사며, 쉽지 않은 생활이었는데, 14살이, 자취?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의 범주를 조금만 벗어나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더라. 한 발짝 너머 있는 그곳엔 '자취하는 10대들'이 존재한다.


혼자 자취하는 10대들은 누구일까?

운동부, 아이돌 연습생, 예중예고 입시생이다. 즉, 예체능계에 몸 담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모 품을 떠나 홀로 생활하고 있다. 1가구로 살기도 하지만 그룹으로 모여 생활하기도 한다.


포도초 졸업생 선수들도 혼자 혹은 엄마와 생활하거나 농구부 형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하고 있다. 애들 운동시키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은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고작 14살짜리를 타지에 보내는 부모 마음이야 애달프지만 정작 아이들은 씩씩하게 잘 지낸다.


작년 주장 형도 현재 서울에서 농구부 형들과 숙소 생활을 하고 있는데 혼자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고, 주말이면 홍대로, 강남으로 놀러 나간단다. 인천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한 친구와 지하철 타고 만난다는 소리 듣고 "우와, 지하철도 타고 다니고, 써울 싸람 다 됐네!" 엄마들끼리 깔깔대며 웃었다.


작고 옹골찬 소도시인 우리 동네는 어디를 가도 차로 10분~20분 거리이지만, 걷기에는 애매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 픽드롭하는 라이딩이 일상이다. 카레 운동 때문에 전세로 얻은 오피스텔도 차로 등교하면 10분이지만 걸으면 25~30분이다. 그 정도 거리는 걸어 다니게 하라는 코치님 말씀에도 차로 애 실어 나르라 바빴는데, 매우 바쁜 어느 날, 도저히 카레를 데리러 갈 시간이 안 되었다.


아이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집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었는데, 이후 나와 시간이 맞지 않거나 형들이랑 놀아서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는 혼자 걸어오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고 보면, 내가 어렸을 땐 학교도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고, 초등학교 때부터 버스나 지하철 타고 친구집과 시내로 다녔는데 말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아이를 보낸 선배 엄마를 만났다. 중학교 1학년인 아이가 자취한 지 6개월, 선배 엄마는 결국 도저히 안 되겠더라며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내년쯤 서울로 간단다.


"어머님 고향은 원래 제주도세요?"

"그렇죠."

"그럼 난생처음 고향을 떠나는 거예요?"

"그렇죠."

"직장은 어떻게 하시고요?"

"그게 걱정이죠, 하하."


잘 다니던 엄마 직장까지 관두고 원룸살이 시키는 운동하는 우리 아이들, 이건 맹모삼천지교가 아니라 농구삼천지교다!


한편, 맹모삼천지교든 농구삼천지교든 그 아이가 맹자여야만 의미 있는 일인 것처럼, "수도권에서 콜을 받았다."는 가능성의 증거 덕분에 기꺼이 자취 생활을 하는 기러기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혼자 보낼 것인가, 같이 갈 것인가'의 선택이다.


가족 모두가 주거지를 옮기기보다 주말부부를 하거나, 아이를 홀로 보내는 집이 대부분이다. 먼저 경험한 선배 엄마들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가 주말마다 집에 오는 건 아니란다. 훈련과 대회 일정 때문에 가장 바쁜 건 아이이다. 자연히 부모가 올라가서 아이를 만나는 라이프 스타일이 형성된다.


올라가거나 내려오거나.


종래 집이 역세권이어야 누가 되었든 편할 것이다. 카레가 서울로 갈 수 있을지 말지도 모르는데 공연히 나는 KTX역 근처 아파트를 들여다본다. 음, 2년 후에는 여기로 이사 가야겠군. 농구삼천지교 삶에 점차 순응하는 나.




농구삼천지교에 따라 본가를 떠나 '가끔 오는 손님'이 될 아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카레 학교에 따라 온 가족이 이동하며 함께 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기러기 가족이 된다면 중, 고등학교 때 아이와 한 집에서 잘 날은 많지 않다. 카레가 농구를 잘하여 대학을 가고 프로까지 간다면, 대학교는 기숙사 생활, 프로는 숙소 생활...... 실제 아이와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낼 시간이 남지 않은 셈이다.


한 집에 남편과 나, 둘만 생활할  또한 머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이랑 지금부터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윽.


자취 [사전적 의미] 가족이나 동거인 없이 홀로 생활하는 행위


또 다른 자취 의미

1.       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

  

모쪼록

운동선수도,

아이돌 연습생도,

예중 예고 입시생도,

10대 때의 자취 생활이 삶의 의미 있는 자취로 남아 자신이 원하는 궤도로 진입하기를 기원합니다.


10대들의 자취는

어린 날 꿈의 자취이자 흔적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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