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삼천지교가 비단 중학교 진학 때만 이루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원룸 생활이 시작되는 일도 적지 않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사례 1] 내가 사는 지역에 농구부가 없다
내가 사는 지역에 엘리트 농구부가 설치된 학교가 없어서 전학을 해야 하는 경우. 카레가 사례 1에 해당한다. 카레가 사는 곳은 '햅쌀군'인데 포도초등학교는 30분 거리인 '태양 군'에 있다. 수도권에서 30분이면 지척이지만 지방에서는 먼 거리다. 버스도, 지하철도 없기 때문에 오로지 부모의 라이딩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첫 한 달 등하교 시키다 온갖 병에 걸려 앓아누운 엄마 때문에 결국 학교 근처 오피스텔을 얻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햅쌀군 본가'로 돌아간다.
[사례 2] 코앞에 농구부 학교가 있지만 마음에 안 든다
운이 좋아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 농구부가 설치되어 있지만 코치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학군지를 옮기는 경우.
이는 학부모가 농구를 알아서 훈련이나 경기 플레이가 보이는 경우다. 대개 엘리트 농구를 시작할 때 집이 가깝거나 대회 성적이 좋은 학교를 선택하는데, 농구하는 사람 기준은 그렇지 않더라.
우리 학교 코치님은 대회 성적보다 기본기를 중시하고, 선수 개인 기술과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집중을 한다. 키가 크다고 무조건 센터로 세우지 않고 돌파를 하고 뽈을 올릴 수 있는 가드로 키운다. 이런 코칭 스타일을 아는 부모는 원정 전학을 한다.
코앞에 농구부 초등학교가 있음에도 30km 이상 떨어진 포도초로 오는 선수가 매년 2~30% 정도 된다. 올해는 아예 시도를 옮겨 전학 온 선수가 세 명이다.
전학은 크게 위와 같은 두 가지 이유로 정리되는데 이로 말미암은 결과는 주말부부 원룸살이.
뭔 애 농구 때문에 부부가, 가족이 떨어져서 살아야 하느냐, 두 집 살림은 안 된다 항변하던 집도 결국엔 학교 근처로 방을 구하게 되는 마법.
4학년부터 1년 넘게 30km 라이딩해주었다는 집도 5학년 여름 gg 치고 결국 원룸을 구했다. 선배 부모가 1년을 고생하고 1년 반 남은 시점에 방을 구했다면 필시 빡신 일이겠노라, 하여 나도 뒤따라 집을 구한 연유이기도 하다. 결론은, 매우 잘한 선택.
매일 훈련이 일정한 시간에 끝나지만 사정에 따라 더 빨리 끝날 때도, 더 늦게 끝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갈곳 없이 남의 집 전전하게 된다. 농구부 특성상 이 집 아이, 저 집 아이, 모두 내 아이 마인드이지만 고된 훈련 끝에 편하게 집에서 쉬고 싶은 선수 입장도 있는지라 결국 편의를 따르게 되는 셈이다.
홈스테이를 통해 전국 농구부와 교류하다 보면 각자의 사정을 듣는다. 우리 아이들이 보석초 홈스테이를 제공받았을 때 일이다. 연습경기 후 학교 근처 고깃집에서 포도초와 보석초 학부모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대부분 15분 이상 거리가 집이라 모임 시간이 다소 늦었다. 그런데 한 학부모가 요 고깃집 바로 뒤가 집이라고 하며, 애들만 들여보내놓고 얼른 오겠다고 하신다.
"오, 다른 집과 달리 되게 가까우시네요?"
"아, 애 때문에 원룸 구했거든요."
크, 이 동네도 다름없구나. 이 집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아이와 생활하고 있단다. 아이고, 노고가 많으십니다, 아버님.
우리 집에 홈스테이 온 소나무학교 6학년의 기절초풍 이야기도 들어보실라우? 이 아이는 편도 2시간 30분을 등하교하고 있었다! 왕복이 아니라 편도 2시간 30분. 자기 집과 학교가 그만큼 거리란다. 지하철 두 번에 버스 한 번을 환승해야 한단다.
"뭐? 그럼 도대체 아침 몇 시에 나오는 거야?"
"6시쯤 나오면 8시 30분에 도착해요."
"아니..... 야간훈련도 있을 거 아냐?"
"네, 7시에 훈련 끝나고 집에 가면 9시 30분~10시 정도 돼요. 밥 먹고 씻고 이것저것 하면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자요."
"너 진짜 대단하다......"
"집에 가서 아무것도 못하는 게 좀 아쉬워요. 아! 아빠가 아침에 가끔 태워주시는데 아빠는 새벽 5시에 나가셔서 시간이 안 맞아요."
"저녁에 훈련 끝나면 힘들 텐데...... 저녁이라도 아빠차 타고 오면 좋을 텐데, 그치."
"저녁에는 동선이 안 맞아서요."
"그럼 하루에 5시간을 등하교 하는 거잖아. 그렇게 고생하는데도 농구가 하고 싶어?"
"네!"
진학하는 중학교는 버스로 한 번에 가는데 1시간 거리라고 좋아하는 모습에 "에이그, 우리 애들은 20분 거리도 엄마, 아빠 차 타고 다니는데 말이야!" 죄 없는 포도초 농구부를 소환할 수밖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오래된 격언은 농구판에서 유효하다. 어느 부모가 초등학생 자식을 왕복 5시간 대중교통길에 올리고 싶겠는가.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농구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럴 거면 너 혼자 학교 다녀!" 으름장을 놓았을 수도, 자녀의 농구 의지를 테스트하는 것일 수도, 정말로 아이 혼자 등하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은 이 아이가 농구를 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고, 지하철 두 번에 버스 한 번 환승하는 기나긴 등하교 여정을 2년 가까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