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의 이유

-인간공장

by 지혜안

빨간 꽃 노란 꽃 꽃봉오리 피어도 미싱은 돌아가네 잘도 도네. 자칭 인간 공장.


어둑한 밤, 거실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에 드라마 하나 켜놓고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대나무 바늘이 편물의 구멍에 들어갔다 나와서 검지 손가락을 휘감고 적당한 탄력이 주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손끝의 감각에 집중해 목도리를 짜 내려간다. 정확한 규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눈과 손은 뜨개질에 집중한다.


그리웠던 적막감.


아이들이 잠든 밤, 실뭉치를 들고 거실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반복과 몰입. 온전한 내 시간.




임신 5개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타 도시로 이사 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타지에 온 터라 친구도 없고 남편도 퇴근이 꽤나 늦어 하루 종일 라디오를 틀어놓고 살았다. 그때 내 손에 들려진 실과 바늘.


“무슨 걱정 있어?”

“걱정은 무슨. 뜨개질이 잘 안 되네. 다음 단에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마무리를 못하겠어.”

“그냥 그만해. 산책이나 하고 쉬어”


남편은 사서 고생을 한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손 끝이 야물지 않은 나에게 뜨개질은 쉽지 않은 취미였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난관에 부딪혀 하루 종일 실과 씨름하기도 했다. 실컷 해놓고 실수가 보이면 원점으로 돌아가니 여간 허무한 게 아니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푸르고 짜고를 반복하다 새벽 3시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 작은 아기 모자.


취미로 이렇게 스트레스받을 일인가. 그럼에도 뜨개질은 참 중독적이었다.

포근한, 까칠한, 부드러운, 바스락하는 손 끝에 남는 실의 촉감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니. 실이 가진 특색을 손끝으로 느끼다 완성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뜨개질하는 시간이 이렇게도 즐거울 수 있을까.


몰입이 주는 즐거움,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 무엇보다 완성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손만 움직이면 되니 많은 장비나 재료도 필요 없었고 마음만 먹고 앉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렇게 아기 모자와 세트로 조끼까지 완성하고 큰 아이를 출산하였다. 출산과 육아는 실로 어마어마한 이벤트라서 취미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꽉 찬 행복이었지만 때론 서툶과 어려움의 끝이었다. 아이 챙기랴, 내 몸 챙기랴 정신이 없었고 쌓여있는 실뭉치들은 그렇게 서랍 한쪽으로 치워졌다. 당시 나에게 뜨개질은 배부른 소리였다. 나의 하루는 아이가 깨면 시작됐고 아이가 잠들면 같이 눈을 감았다. 첫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가고 나니 육아 5년 차 엄마가 되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베란다에, 구석진 서랍에, 켜켜이 쌓여있는 실뭉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정집에 며칠 묵을 땐 해볼까 싶었지만 한 가닥도 잡아보지 못하고 두고 온 친정집 한 켠 바구니에 있는 실들도 모았다.

정신없이 뭉쳐있고 쌓여있는 게 마치 먼지 앉은 내 모습 같았다. 지난 5년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았구나.

다시 해볼까. 다시 뜨개질을 해볼까 싶었다. 근데 이 뜨개질이란 게 또 요상해서, 반복과 규칙을 잡아간, 이미 시작된 작품은 자꾸 하고 싶은데 뭔가 다시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나에게는. 손에 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데 그 한번, 손에 잡기가 어려워지는 육아맘의 뜨개질.


뜨태기가 왔다.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실들이 한가득 쌓여있는데 실과 바늘이 손에 들리지는 않고 인터넷 쇼핑으로 남들이 만들어놓은 작품들을 보며 또 실을 주문하곤 하는 것이다. 손에 닿을 곳에 재료들이 즐비한데 실만 수집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실과 바늘에서 손이 점점 멀어지던 어느 날, 아이디어스라는 핸드메이드 판매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이거다 싶었다.


서랍을 열어 그동안 만들었던 소품들 중에 가장 단순하고 귀여운 소품들을 끄집어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오전 시간 며칠에 걸쳐 아이디어스 심사 파일을 준비했다. 잔디밭, 커피숍에 가서 사진을 찍고 그럴듯한 설명과 판매 계획을 세운 프로젝트 파일을 만들었다. 오랜 전업 주부 생활에 경제적 자립은 먼 이야기였던 나에게 아이디어스 입점은 아이들과 동떨어진 나만을 위한 목표였고 목표를 향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꿈꾸는 소녀같이 마음 설렜다.





아이디어스 작가가 되었다. 뜨개질을 더 할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