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찜 말고 주문이요.
-내 안의 빌게이츠
띵동
핸드폰 알림이 왔지만 확인할 겨를이 없다. 하원 시간, 한 손은 버스에서 내리는 둘째 아이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론 선생님께 어린이집 가방을 받아 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깜빡이는 초록색 신호등 숫자를 세며 횡단보도로 돌진하려는 아이손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준다.
“뛰면 다쳐!” 억척스럽게 소리치는 순간, 한 번 더 왼쪽 손목 스마트 워치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순간 서랍 속에 미리 만들어놓은 목도리 재고수를 떠올린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하니 역시나 아이디어스 작가 앱에서 온 알림.
‘000님이 유아 네키 목도리를 찜하였습니다.’
아 찜이구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도의 한숨.
아이디어스에서 찜은 구매자가 내가 올린 작품을 구매는 하지 않고 구매 후보에 올려두었다는 뜻이다. 찜했지만 가져가지는 않을 때, 판매자는 보통 두 가지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하나는 감사. 나의 작품을 구매 목록 후보에 올려주어서, 많은 구매자만큼이나 판매자의 다양성이 많은 온라인 시장에서 내 작품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두 번째는 아쉬움이다. 작품을 찜했다는 건 작품이 어느 정도는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인데 왜 구매로 연결되지 않은 걸까 싶은 아쉬움. 찜한 고객은 내 판매 작품을 장바구니엔 담아두었을까? 찜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찜에서 구매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하는 판매자의 비즈니스 마인드.
이 두 가지 감정 말고도 내가 하나 더 느끼는 감정은 바로 ‘안도감’이다.
올려놓은 물건이 팔리지는 않고 팔릴 뻔만 했는데 순간 드는 감정이 안도감이라니.
고백하건대 안도감은 나에게 있는 엄마라는 본캐가 판매자라는 부캐보다 훨씬 클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의도치 않게 부산스러운 오전을 보낸 날, 1시 30분이면 하원하는 둘째를 맞이하러 가는 걸음이 분주하다.
오늘 아이가 아침에 아이가 피부를 긁던데 소아과에 들러서 알레르기 약을 처방받아야 해. 큰아이 받아쓰기도 봐줘야 하고 내일은 앞치마를 가져오랬으니까 잊지 말고 꺼내놓자. 저녁에 학습지 선생님이 방문하시니까 거실은 깨끗이 치워놔야지. 오늘은 남편이 일찍 오는 날인데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엄마 본캐가 작가 부캐를 완전히 압도하는 오후,
머릿속은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아이디어스 입점을 준비했던 설렘을 기억한다.
입점 심사 합격 메일을 받기 훨씬 전부터 머릿속은 아이디어스로 가득했다.
핸드폰 메모장엔 브랜드 네임 후보들이 시간차로 몇 개씩 늘어났다. 한글 이름이 나을까 영문이 좋을까. 귀여운 게 좋을까. 세련된 게 좋을까. 질감을 표현하는 단어를 써볼까,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로 브랜드 이름을 만들어볼까. 하루 종일 브랜드 네임을 지었다 바꿨다 하는 나에게 남편은 우리 집 빌 게이츠 났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작가가 되었다고 신이 난 내 모습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방구석 빌 게이츠면 어떠랴, 아이디어스 가심비는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인 나에게 가득했다. 월세 없이 작가라 칭해주는 대우를 받으며 나의 작품을 알아봐 주는 단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해 작업하는 일. 이 얼마나 특별하고 차별화된 판매 루트이며 자존감 높아지는 작업인가.
번화가에 차린 화려한 가게를 꿈꾸며 입점했던 첫 마음이 무색하게 현실은 시골 동네 어귀 뜨개방이다.
아주 가끔 사람들이 들러서 ‘이거 예쁘네. 근데 종류가 많이 없다.’ 하고 만지다 돌아가 귀퉁이 한쪽이 까맣게 손때가 탄 샘플 목도리가 걸려있는 가게. 문을 닫을까 말까 하다 열어두면 누군가는 들러주겠지 싶어 매일 오픈 팻말을 걸어놓지만 매출은 거의 없는 그런 가게. 부동산 아주머니가 와서 인테리어 좀 바꾸고 물건 좀 갖다 놓으면 잘 팔릴 텐데 다른 거라도 차려봐. 라며 훈수 두는 가게.
작가 앱 내에 나의 페이지 모습이다. 업데이트는커녕 유아용 네키 목도리 하나만 주야장천 밀고 있는 주인. 그런 이유로 처음에 올려놓은 유아용 네키 목도리는 의도치 않게 내 마켓의 효자 상품이 되었다. (외동이라 하나라도 팔리면 효자다.)
주문이 아닌 찜에 안도한다는 건 반대로 주문이 들어왔을 때 내가 쏟는 몰입에 많은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기분 좋은 몰입이다. 나에게 몰입의 기회를 준 구매자에게 참 고맙다. 한단 한단 정성껏 작품을 만들어 보내고 정갈한 손글씨로 오늘의 행복을 기원하는 글을 써 보낸다.
닉네임 정도의 작은 정보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거나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나와 조금은 닮은 사람이겠거니 싶다. 게다가 손끝이 닿은 세상에 단 하나 있는 작품이 서로를 연결해주니 내적 친밀감이 마구 높아진다. 구매자는 엄마도, 판매자도 아닌 ‘작가’에게 기대하는 기회비용을 지불했기에 그에 맞는 값어치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아이디어스 작가라는 부캐가 엄마라는 본캐를 보란 듯이 역전하는 순간이다.
오늘, 모처럼 여유 있는 저녁이다. 아이들은 아빠랑 놀이터에 갔다. 집은 이미 치워져 있고 저녁은 다들 좋아하는 족발을 시켜 먹기로 했으니까. 이런 날의 찜은 아쉽다.
내 안의 부캐, ceo, 억만장자, 욕망 아줌마, 빌 게이츠가 외친다.
"고객님. 찜 말고 주문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