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를 선물한다는 건.

-본격 생색내기

by 지혜안


“너무 귀엽다. 목도리 하나 만들어줄게. 주소 보내줘.”


아뿔싸. 친척 결혼식에서 만난 귀여운 조카를 보고 뱉어버린 말. 주워 담지 못할 말. 입이 방정이다. 뭘 또 만들어 보낸다고 말을 해버렸니. 스스로 원망해보지만 때는 늦었다. 손목이 남아나질 않는다.


귀여운 어린 친구를 보는 순간 '노랑색이다'했다. 보들보들 차오른 복숭아 같은 두 뺨, 가느다란 깃털 같은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 세상 무심한 순둥순둥한 두 눈.

생후 200일 남짓한 어린 생명이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순간, 이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내가 만든 ‘레몬 노랑 목도리’가 둘러지는 상상을 하며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고 만 것이다.


앙증맞은 작은 사람에게 꼭 어울릴만한 목도리와 머리핀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다. 내가 공장이라면 열심히 찍어내서 색깔별로 입히고 둘러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그러나 만들어놓고 해야 할 말이다. 내뱉은 말은 숙제를 남기고 스스로 낸 숙제를 끝내기 전까진 마음 한구석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차라리 옷 한 벌을 사 보낸다고 할 걸 그랬나.






부끄럽지만 선물에 인색한 편이다. 정확히는 내가 만든 걸 누군가에게 선뜻 주지 못한다. 재고 따지는 게 많다. 머릿속엔 이미 선물 주고받고 감동의 눈물 흘리고 보답까지 받았다. 현실은 뭘 줘야 하나 아직도 고민 중. 누군가 그러더라. 주는 마음이 전달되면 되는 거고 받는 이가 볶아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하는 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핸드메이드 선물은 좀 다르다. 선물이란 게 줄 때까지만 내 소관이라는 것엔 전적으로 동의한다만 내 작품이 그 집 어딘가 굴러다니는 꼴은 곧 죽어도 싫다. 옷장에 처박혀 케케묵는 건 더 견딜 수 없다. 실패를 줄이려면 좀 더 세심한 취향 파악이 중요하다. 받는 사람을 생각하다 못해 오랜 시간 묵상한다. 색을 배치하여 길이를 재어 디자인하고 재료를 고르고 만든다. 웜톤인지 쿨톤인지 떠올린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지 세련된 걸 선호하는 편인지. 귀여운 걸 좋아한다면 니팅 백이, 고급스러운 걸 선호한다면 캐시미어 실로 뜬 목도리가 괜찮겠지. 받을 사람의 편의를 생각하고 부자재를 쓴다. 좋아할 만한 포인트는 넣되 최대한 절제한다.

선택과 결정의 연속.



모든 핸드메이드가 그렇겠다만 뜨개질은 시간이 많이 쓰인다. 마음처럼 쉽게 선물할 수 없다는 뜨개질러의 변이랄까. 바늘과 실을 움직여 선이 면이 되는 과정에 드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물론 이 지루하리만큼 단순한 반복이 좋아서 빠져들었다만. 면과 면을 합쳐 드르륵 박는 가죽공예를 했다면, 원단과 원단을 붙여 만드는 재봉틀이었다면 수고를 좀 덜었을까. (아니, 못할 거 알잖아.)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로 기억한다. 꽃을 시샘하는 찬바람이 강하던 날,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신 민트색 목도리를 목에 둘둘 감고 등교했다. 특별할 것 없던 어린 시절의 한 날, 두껍고 폭닥했지만 다소 까칠어서 목을 긁게 만들었던 민트색 목도리의 촉감이 생생하다. 그랬다. 엄마가 만들어 준 목도리는 포근하고 부드럽지 않았다. 강렬히 기억나리만큼 까칠했던 목도리였다.

목에 감아주는 부드러운 엄마의 손길이, 내 눈을 보며 학교를 보내는 엄마의 얼굴이 목도리가 주는 까칠한 촉감으로부터 기억 속 어딘가에서 떠오를 줄 누가 알았을까.



굳이 완벽하지 않아도 되지 싶다. 모든 물건은 손이 탄 사람의 고유한 기운이 깃들기 마련이니. 까칠한 목도리의 촉감이 내 어릴 적 젊은 엄마의 얼굴을 떠오르게 하는 아련함을 전해준 것처럼. 수작업으로 한 올 한 올 감아올린 나의 선물도 누군가에게 한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 되면 그걸로 좋을거 같다.


아무도 만들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생색을 너무 부리네. 역시나 아직 하수인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고객님, 찜 말고 주문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