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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Dec 14. 2023

나, 여기, 지금

글 쓰려고 앉았는데 노래만 듣네요    


"학교 가기 싫어~~"


 커튼을 열어젖히고 자도 해가 들어오지 않는 흐린 아침이다. 일찌감치 일어나 거실에서 색칠공부를 하고 있는 두두와 달리 아침잠이 많아 일어나기 힘든 열매는 눈도 뜨기 전에 투덜투덜 징징 거린다. 10분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부아가 치미는 마음을 누르고 뽀뽀 공격을 써본다.

"내 새꾸. 힘들어요? 일어나욤~ 우왕우왕 볼을 먹어버려야겠다~~!! "

뽀얗고 통통한 아이볼을 입술로 왕하고 먹는 시늉을 한다. 아이 볼에 입술을 부비는 건 부모만 할 수 있는 특권인 거 같다. 짧은 순간 사르르한 행복이 느껴진다.

있는 모든 주접을 떨어 아이를 웃게 만들고 온몸을 껴안아 좌우로 마구 흔든다.


"우왕 엄마~~ 학교 가기 싫어~~ 안아줘~~"

숨도 못 쉬게 안아주고 온몸을 주무른다. 엄마의 손길이 여전히 좋은 열 살.

이불에서 같이 뒹굴거리며 몸이 개운해질 때까지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을 꾹 누루고 먼저 일어난다.

눈이 붙어 미적거리는 아이를 간신히 깨우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아이들이 8시 50분에 맞춰 교문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손을 흔들어준다. 빠른 걸음으로 가면 지각은 면할 텐데 느긋하게 들어가는 두 녀석을 보며 얼른 뛰어라고 보채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내일은 더 일찍 깨우고 서둘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혼내며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출발이 좋다.


 





노트북을 가지고 카페로 바로 향했다. 아이들이 가버린 집에서 널브러진 옷가지와 밥그릇을 정리하기보다 같이 집을 나서기로 했다. 단축수업으로 12시 30분에 오는 요즘 같은 날들은 오후에 아이들과 집에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집안일을 하기로 하고 오전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카페로 걸어오면서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 가사가 콕콕 꽂힌다. 이 곡만 듣고 집중해야지. 이 곡만 듣고 이어폰 빼야지. 했는데 내가 정해놓지도 않은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가 어쩜 이리 내 마음에 쏙쏙 들어올까. 취향을 간파당했다.


귀에 울리는 흘러간 가요를 들으며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본다. 집정리를 해야지 생각하면서 보는 미니멀라이프 글들을 단숨에 읽는다. 참 재밌다. 음악을 들으며 브런치 글을 읽는 시간 힐링을 느낀다.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시기가 있었다. 입시를 위해,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바짝 준비하여 집중해야 하는 시간. 여기 이 카페에도 두꺼운 책을 펴놓고 필기하며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인강을 들으며 앞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20대에 어학점수를 위해 전철에서 책을 펴고 공부하고 취업 스터디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공부 시간이 결과에 직결되므로 매일 공부해야 할 분량을 정해놓고 공부했던 시기, 공부에 에너지를 쏟던 시기. 그때의 나라면 이렇게 카페에 앉아서 멍 때리면서 계속해서 귀에 꽂은 음악에 집중하는걸 시간낭비라 했을지도 모른다.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는 상태, 어떤 목표를 향해 머릿속이 가득하지 않은 상태.

글 읽고 싶으면 읽고 글 쓰고 싶으면 쓰고 랜덤 플레이 리스트가 맘에 들면 그저 계속 들어도 되는 요즘. 치열하게 살지 않는 지금에 만족한다.


살다 보면 또 무언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오겠지. 크고 작게 목표를 세우고 이루기 위해 시간을 쏟아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고시 같은 공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자기 발전을 위해 인터넷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자격증공부를 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짜지 않았지만 시작해야 하는 2024년 공부도 있고. 그 시기가 되면 집중할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갈 것이다. 더 일찍 일어나고 아이들에게 쏟는 에너지를 내게 옮겨올 수도 있고 틈틈이 공부시간을 만들어 더 체계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날을 살아가면 된다.  






아무튼 그땐 그때고 나는 지금, 오늘의 잔잔함이 좋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런 시간은 축복이자 기적이다. 뜨겁게 간절히 기도하던 무탈한 삶 아니던가.

지금, 여기, 나. 그리고 우리에 만족하며 평화로운 오후도 보내고 싶다.

조금 후엔 노트북을 접고 아이들을 맞으러 가야겠다. 오후엔 둘째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고 집을 돌봐야 한다.


음악과 글이 있는 오전, 전업주부의 소소한 일상이자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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