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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水)아일체는 샥즈로부터

by 지혜안



" 어디라도 나가는 게 어때?"



영혼 없는 질문,

맥모닝을 주문해 놓고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이번 주 토요일엔 꼭 집콕을 하고 싶다는 초등 남매의 바람이 엄마의 그것과 꼭 맞아떨어졌다. 6월 한 달은 신경 쓸 일들이 계속 있었다. 양가 부모님 중 두 분의 칠순잔치를 했고 짧은 1박 2일 가족여행이 있었다.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한 주, 한 주 보내다 보니 6월은 열흘남짓 남았고 일기예보엔 장마소식이 들렸다.


못 이기는 척 집에 있기로 했다. 첫째 열매는 내 노트북을 빌려 자기 방에 들어가 엔트리 코딩 삼매경에 빠졌고 둘째 두두는 작은 방바닥에 깔아 둔 나노블록 설명서를 보고 블록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며 자주적으로 시간을 채워가는 토요일, 마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난 뭘 할까? 오후엔 수영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혼자 피식 웃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강습을 다녀오고 토요일에도 자유수영을 가겠다고? 김종국도 울고 갈 운동중독 아닌가? 그렇지만 오늘은 강습수영 말고 그냥 물놀이하듯 하는 수영이 하고 싶었다 앞사람 따라가느라, 뒷사람 신경 쓰느라 죽기 살기로 하는 운동 말고 물속을 가로지르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접영, 자유형은 하지 않으리라. 배영, 평영만 돌고 오자 하면서 수영가방을 꾸렸다.


자유수영의 친구, 수중 골전도 이어폰도 함께.






어머 이건 사야 돼.


수영 커뮤니티에서 골전도 이어폰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구매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속에서 듣는 이어폰이라니. 뼈의 진동을 통해 고막을 거치지 않고 달팽이관으로 직접 소리를 전달한다고? 이런 신통방통한 이어폰이 있다니. 골전도 이어폰이란 아이템에 한번 놀라고 그걸 물속에서 착용할 수 있다는 데 두 번 놀랐다. 수중 골전도 이어폰계의 명품 브랜드, 샥즈.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자유수영을 위해 20만 원을 훨씬 웃도는 취미비용을 쓸 순 없었기에 샥즈 대신 저렴이 가성비템 수중골전도 이어폰을 구매했다. 1/5의 비용을 생각하면 내가 구매한 가성비템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제목에 쓰인 샥즈는 수중 골전도 이어폰의 대명사로 쓰인 것임을 밝힌다. 나에게 샥즈는 여전히 위시템이다.


골전도 이어폰계의 대명사, 샥즈.




오후 늦게 도착한 수영장은 한산했다. 스마트워치에 실내수영을 설정하고 이어폰 중간버튼을 두 번 누르자 경쾌한 비트와 함께 악동뮤지션의 음악이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2레인 끝에 앉아 다리를 적시고 천천히 들어가 출발 후 몸을 돌려 배영을 해본다. 강사님의 사인에 신경을 집중하지 않고 앞뒤 거리 생각하지 않고 혼자 하는 수영이다. 벽을 차고 출발하는 발이 강습 때완 사뭇 다르게 느껴진 건 비장함이 덜어져서일까.


느려지지 않게 팔을 돌리지만 발은 편안하게 찬다. 입으로 마시고 코로 내뱉으며 박자에 맞춰 호흡하려 애쓴다. 누워서 턱을 살짝 당겼을 때 보이는 수영장 천장의 네모 타일이 점점 늘어나 레인 끝에 거의 다 왔음을 알리는 깃발을 지났을 때 몸을 휙 돌려 수영장 벽을 찍고 다시 출발. (턴이라 부를 수도 없는 형편없는 턴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로켓이 된 냥 물속에서 몸을 쭉 가로질러 본다. 몸이 멈추려는 찰나, 자유형 동작으로 팔을 두 번 젓고 재빨리 몸을 돌려 배영 자세를 잡는다. 그렇게 서너 바퀴를 돌다 몇 바퀴 째인지 세기는 그만둔다. 귓가에 노래가 바뀔 때에 3분 정도 지났구나 하면서 수중 콘서트에 집중한다.


이게 진짜 힐링 수영이지.


유유자적, 샤부작샤부작 배영하다 휙 돌아 벽 한번 잡고 다시 발로 뻥 차서 추진력 얻어 팔 돌려 배영 슉슉. 무한반복. 이거 너무 재밌잖아.라고 생각하며 계속 돌았다. 마치 내가 배영을 엄청 잘하는 사람이 된 거 같았다. 귓가에 노래는 계속 흘렀다.



운동은 템빨이란 말, 오늘 딱 맞았다. 물속에서 더욱 풍성해지는 최애곡을 들으며 인어공주가 된 마냥 물을 타고 음악도 타고. 더구나 호흡에 비교적 자유로운 배영일지라도 쉬지 않고 15분 넘게 쉬지 않고 수영했다는 건 내겐 기록적인 일이라 어깨가 으쓱했다. 쉬지 않고 팔, 다리를 15분 넘게 움직여서 운동앱도 놀랐나 보다. 오늘의 유산소 운동을 '과도'하다 평해주다니. 이 또한 처음이었다.






물(水)아일체는 물(物)아일체로부터 오는 게 분명하다. 나의 자유수영에서 수중 골전도 이어폰은 필수템이 되었다. 혼자 하는 수영만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있을까? 귓가에 울리는 음악만큼 좋은 수영친구가 또 있을까? 흔들리는 물결의 파장을 타고 풍성해지는 음악을 들으며 수영하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혼자라서 더 즐거웠다. 이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수영이 얼마나 해볼만 한 운동인지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사진출처. 픽사베이, 샥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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