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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Nov 22. 2022

마흔 하나,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비가 쏟아지던 날의 분식집

갑자기 퍼붓는 비에 쫒기다 시피 달려들어간 분식집은 생각보다 너무 협소했다.

아이들 넷, 어른 셋이 부족한 우산을 나눠쓰고 옆 상가 키즈까페에서 이동하던 차였다.

떡볶이가 맛있다는 동생의 말에 저녁을 가까운데서 먹기로 하고 들어온 분식집이었다.

2인용 테이블 2개, 그나마 1개 있는 4인용 테이블은 이미 먼저 들어온 4인 가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 자리가 없네?


다른 식당을 찾기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었다.


- 일단 애들 앉히자.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한 살 차이가 나는 첫째 두 명을 한 테이블에 앉히고,

동갑내기인 둘째들은 또 다른 테이블에 앉혔다.


어른들은 스탠딩이었다.

그나마 구석에서 파란색 휴대용 플라스틱 의자를 찾아 둘째들 테이블 옆에 놔주었다.


키즈까페에서부터 너무 배가 고프다고 힘들어하던 동생을 앉혔다.

다행히도 메뉴에는 전혀 맵지 않은 짜장 떡볶이가 있었다. 분식집에 걸맞지 않는 최신식 키오스크로 주문을 마치고 아이들 테이블에 각각 한 대씩 태블릿을 설치해주었다.


키즈까페에서 원없이 뛰어놀았는지, 아이들은 엉덩이를 붙붙이고 얌전히 유투브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분식집의 작은 현관문 밖으로

비 내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어져왔다.


결혼 전부터 살던 아파트 단지의 옆동네, 신혼집도 이 근처로 구했었다. 아직 차가 없던 시절에 회사 셔틀버스가 이쪽으로 내려주어서 야근 후에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던 길들이 눈에 익었다.


그 때도 생각했었다. 정말 오래되었지만, 예쁜 동네다.



스탠딩으로 먹게된 저녁은 예상외로 유쾌했다.


우리 자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용 포크와 가위, 그리고 종이컵에 물을 담아 각 테이블로 날랐고

개인 접시에 아직 뜨거운 짜장 떡볶이를 2~3개씩 덜고 가위로 파파팟 잘랐다.


적은 양,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아이들이 빨리 먹을 수 있게 조치하는 것은 엄마라면 어디를 가든 자동 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제 1의 액션이었다.


펄펄 끓는 삼계탕 갈비탕도, 한수저 분량의 밥 말은 국물을 바닥이 얕은 (깊으면 안된다) 접시에 넓게 펼쳐 뿌리고 후-후- 5번만 불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온도의 밥이 된다.


떡볶이의 경우는 밥보다 밀도가 더 높아 식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더욱 작게, 거의 정육면체가 될 것 같은 크기로 잘라 주었다. 그랬더니 포크를 찍지를 못한다. 숟가락을 가져다 주었다.


비오고 배고프고 피곤 나른한 아이들에게 짜장 떡볶이는 신의 한수였는지 먹여달란 소리도 없이 열심히 잘 먹었다. 어른들도 그제서야 길쭉하고 빨간 떡볶이와 뜨끈한 오뎅 국물을 먹기 시작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먹으니 마치 트럭 포장마차에서 먹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런 트럭들이 많이 보였었는데,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인지.


손님은 우리와 4인가족 두 그룹 뿐이었지만

젋은 사장님은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배달이 밀려들어왔기 떄문이다.

우비와 헬멧을 쓴 라이더들이 계속 들어왔다.

어딘가 주문이 꼬인 모양인지, 계속 지연되고 있는 듯 했다.


그래 비오는 날 떡볶이는 국룰이지.


집에서 애타게 떡볶이를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이렇게 빗소리를 들으며 오뎅 국물을 음미하는 우리가 새삼 운이 좋다 느껴졌다.


더군다나

트럭에서 사먹던 떡볶이와 오뎅보다 훨씬 맛있었다. 무엇보다 오뎅 국물의 맛이 깔끔했다.

보통 분식집에서 파는 국물은 태반은 조미료로 맛을 낸 것일텐데 이 곳은 달랐다. 밥을 말아 먹어도 될 정도로 맛이 깊고 시원했다.


떡볶이 4개 정도를 먹고 오뎅 국물을 두수저 정도 떠먹고 나면 아이들의 개인접시가 비어있다. 다시 짜장 떡볶이 3줄을 리필해준다.

제일 나이가 많은 (그래봤자 8살이지만) 조카 아이는 역시 먹는 속도가 남달랐다.


- 이모, 저 오뎅도 주세요.


떡볶에 속에 있는 오뎅을 달라는 주문이다.

그럼요 드려야죠.


다시 접시를 채워주고 나니 등줄기에 땀이 쭉 흐른다.

남편과 동생 뒤 쪽으로 해서 입구로 나가 잠시

분식집 처마 밑에서 바깥 공기를 마셔본다.

   

시원하고 비릿한 비냄새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된 나뭇잎들의 냄새와 섞여

구수한 둥글레차 같은 향이 난다.


물이 많이 고인 길바닥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들이 수없이 많이 떨어져있었는데, 쏟아지는 빗줄기와 바람 때문에 더 많이 덮이고 있었다.


아이들의 빈 접시 생각이 나서 다시 내 포지션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다 먹었구나.


- 순대도 먹어볼래? 쫄깃쫄깃한데.

- 아니요, 전 안좋아해요.


야무진 조카의 대답.

들 아이는 대답도 안한다.


이제 거뜬히 떡볶이 1인분을 아이 둘이서 다 먹어치우는 나이가 되었다.


- 언니 얘들 다먹었어. ㅋㅋㅋ

- 응 여기도. 잘먹네~~ 여기 맛있다!


동생은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빗속을 뚫고 다시 차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겠다며, 차를 가지고 요 앞으로 오겠다고 하고는 우산을 쓰고 나갔다.


두 조카아이들은 우리 아이들과 재잘재잘,

고래밥과 콘칩을 후식으로 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 사이 남편과 나는 다 먹은 음식들을 퇴식구로 치우고

해도 해도 너무하게 엉망이 된 바닥을 대충 치워가며 마무리를 한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엄마 노릇이 익숙하게 되었을까?

모든 것이 새로워 긴장되고 걱정만 많던 초보 엄마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매주 만나지는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만나 네 명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들의 사회가 탄생하는 모습이 경이롭다.

각자 타고난 기질이 다른 존재를 만나 어떻게 발현되고 또 조정되고, 발전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엄청난 기쁨이다.


우수한 아이, 뛰어난 아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에 아이들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배우고 자란다. 그것이 눈에 보인다.

일 분 일 초가 다른데,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 다만, 요즘은 이렇더라, 이런 성향을 보이더라 라고 말할 수 밖에.


오래전 살던 동네에 가서일까.

트럭에서 떡볶이 오뎅을 사먹던 옛날 생각이 나서일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일까.


나는 그 날이,

마흔 한 살로 살아가는 1년 중

참 뿌듯한 날이었다고 기억된다.


전전긍긍하고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항상 불편했던 나의 30대를 생각하면, 나의 40대는 좀 더  단단한 것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치밀어오르는 원망과 화를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전가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내가 또 그러려고 한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기 문이다.

 

뜻대로 안되었지만, 그래서 손해를 보거나 시간 낭비를 했지만,

결국 그 시간을 실패한 날로 만드는 건 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가족이 결론적으로 즐거웠느냐 이다. 예상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괜찮은 하루로 만들어가는 것은 나의 몫인 것이다.


내가 단단하고 안정된 40대라는 걸 느끼는 때는 

자주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의 마흔 한 살, 기쁘게 단단한 순간들을 기록해 놓고 싶다.


빗 속 분식집에서 바글바글 복작복작

떡볶이를 먹었던 저녁.


그 날 나는 참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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