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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Nov 29. 2022

마흔 하나, 내가 사는 집

집에서 나는 냄새

나는 살림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 살림을 배워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살림이라는 것은 인생에서 어떤 것도 꿈꾸지 않고, 이루지 않은 실패한, 한마디로 한심한 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징벌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살림'만'하는 어른 여자를 나는 평생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도, 이모도, 외숙모도, 엄마도, 작은 엄마도, 고모도, 모두가 일을 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했다.


그녀들은 살림'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늘 한탄했고

어린 나와 동생에게 살림이란 건 정말 안할 수 있으면 떨쳐버리는 것이 답인 잡 일 이라고 생각되었다.


나 자신이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서도

그 생각은 뿌리깊게 박혀있었다.

가사 도우미를 구하는 일은 당연하게 느껴졌고,

반찬 정기배달, 이유식 배달 등 무엇이든 아웃소싱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선택했다.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고퀄의 음식과 청소 서비스를 편리하게 받을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비용을 지출했지만, 그보다는 이런 일들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깔려있었다.


놀랍게도, 그 생각의 깊은 뿌리가

서서히 뽑혀나가기 시작했다.


작년, 그러니까 마흔이 되던 해였다.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했다.


온전히 내 생각이었다.

깊은 고민, 심사숙고, 남편과의 상의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늘 장고끝에 악수를 두는 나의 성향에 비추어보면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은 의사결정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지쳐있었는지를 몰랐던 것 같다.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기 전까지

나의 피로도를 자각하기란 의외로 어려운 일이더라.

 

둘째 아이 치료를 마쳤을 때 쯤 어머니가 드디어 코로나를 뚫고 한국으로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그 오랜 기간 동안 힘들었을 당신의 아들과 손자들을 마음으로 안으시며 당신이 많이 도와주겠노라 하셨다. 그리고 복직하여 회사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상이 시작되자

더 이상 어머니 없이는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말보다는 행동하는 분이셨고,

잔잔한 잔소리에는 늘 사랑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살림을 잘 하셨다.

그 말은, 참 부지런하시다는 말이기도 하다.


빨래를 돌리고, 거실을 정리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중노동을 조용히 묵묵히 하셨다.

중간 중간 아이들과 놀아주기까지 하시니

살림과 육아와 직장생활에 치이던 나로서는

천국을 맛본 기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집에서는 냄새가 났다.


- 된장찌개 냄새

- 카레 냄새

- 청국장 냄새

- 삼계탕 냄새

- 나물 무치는 참기름 냄새

- 이런 저런 다양한 음식 냄새들.


현관을 들어서면 풍겨오는 그 따뜻한 음식 냄새를 맡고

"엄마 왔다!!!!!!" 하고 큰 소리를 내면

아프리카 초원에서 저멀리 들려오는 코끼리떼의 소리처럼

두두두두두..... 하는 진동과 함께


"엄마~!!!!"

"내가 먼저 갈꺼야아아아아!!!!"


아기 코끼리 두 마리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두 마리를 온전히 안아주기 위해 나는 현관 앞 바닥에 무릎을 꿇고 팔을 벌리고 기다린다.

(그러지 않으면 뒤로 넘어진다...)


그 후에 나타나는 어머니의 실루엣.


"왔니?"

"다녀왔습니다~"


나는 내가 자라면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귀가 인사를

어머니께 한다.



어두운 빈집으로 귀가하던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집에 돌아와도 인사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부엌은 늘 썰렁했고 며칠 전에 끓여놓은 것 같은 곰탕이 남아있었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국에 말아 먹었고 계란을 두껍게 부치고 맛소금을 뿌리면 그것이 진수성찬이었다.


그런데 마흔 한 살의 나는

밝고

따듯하고

우당탕 아이들이 달려오고

맛있는 냄새가 나는 집에 살고 있다.


남편과 함께 귀가하는 날이면

"엄마, 다녀와쑈~" 하는 남편의 목소리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하는 나의 목소리


외투를 벗기도 전에 나를 졸졸 따라오며

끊임없이 조잘대는 큰 아이의 목소리가 가득 찬 집이었다.


그리고 식탁에는 수저와 반찬이 놓여있었다.


"씻고 나와~ 밥먹자~"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


소리와 냄새와 빛이 가득한 우리 집.



내가 경시했던 주부와 살림의 가치는 생각보다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집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충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특별히 심도있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같이 앉아 밥을 먹고,

내일 또는 다가오는 주말계획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이

나를 안정시켰다.


남편과 어머니에게 내가 연출하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며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나를 단단하게 안정시켰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구나.

내가 나이들어갈 곳이 이 집이구나.

이렇게 남편과 눈을 맞추고 가끔 어깨를 만져가며

아이들의 끝없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머니께 맛있는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따라드리며

하루 하루 살아갈 곳이 이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순간마다 충만한 기쁨이 가슴가득 차오른다.



마흔 한 살의 나는

기쁜 삶을 살고 있다.



살림은

정말,

가족을 '살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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