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이거 커피야?
- 응 뜨거워, 조심해
- 나도 한 번 먹어볼래.
- 안돼, 커피는 어린이들은 먹으면 안되는거야. 몸에 안 좋은거야.
- 근데 엄마는 왜 마셔?
- 엄마는 어른이니까.
- 어른은 왜 안 좋은 걸 먹어도 되는거야?
- 어른은 다 컸으니까. 어린이들은 더 커야 하는데 커피는 방해가 돼.
점점 길어지는 큰 아이의 질문에 답하다 보면,
꽤 많은 답변이, "엄마는 어른이니까." 로 귀결되는 것을 느낀다. 이 답변에서 '어른' 이란 신체적으로 성장이 완료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마흔 한 살의 나는, 성인이 된지 20년이 넘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일까?
스무 살 인지, 스물 한 살인지,
성인이 되는 해에 장미 꽃다발과 향수와 뽀뽀를 해야 한다는 말이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되면 술도 마실 수 있고, 독립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나의 어렴풋한 기억으로 마치 성인이 되는 건 특별한 승진이라기 보다는 온실에서 추운 들판으로 내팽개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독립할 수 있다지만, 독립할 능력이 없는데.
술을 마실 수 있다지만, 마시고 싶지 않은데.
뽀뽀를 할 수 있다지만, 할 사람이 없는데.
성인이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한 동안 심난했었다.
그 후에도 여러번, '어른'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 아무리 나이 먹어도, 결혼 안 했으면 애지.
- 자기 아이를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 되는거지.
-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어야 어른이지.
- 우리 할머니는 다시 애기가 되시는 거 같아.
이런 이야기들.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 데다가
스스로 먹고 살 돈도 벌고 있다.
그러니 나는 어른이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는가 하면,
7살 짜리 아들과 언쟁을 벌이다 결국 감정에 사로잡혀
소리지르며 화내고, 아이에게 해서는 안될 법한 말들을 쏟아낼 때 마다
나는 얼마나 유치한 인간인가,
내가 엄마가 맞나, 자괴감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속으로 천불이 끓어오를 땐 심지어 4살짜리 둘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하니, 얼마나 한심한 마흔 한 살인가.
그럴 때마다, 아차 싶어 얼른 아이에게 사과하고 설명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맹세한다.
직장 생활 18년차를 앞두고 있는 지금,
정말 수많은 선배들을 만났었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인간 관계는 좋지 못한 사람.
회사에서는 인기 최고이나,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사람.
상사에게는 잘 하지만 후배들에게는 냉정한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지만, 불륜으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 사람.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징계를 받고 그래도 웃으며 출근하는 사람. 등등.
한 명 한 명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 모두 하루 하루를 고민하고 후회하며, 싸우고 화해하며,
아파하고 가끔은 한숨돌리며 살아가고 있다.
마흔, 쉰, 예순, 일흔.
나이를 어느 정도 먹어야 나의 하루에 대한 고민이 사라질까.
고민이 없는 평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결국 어른인 것일까?
그런데, 고민없이 남에게 민폐만 끼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어른일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어른 대접을 해드리지만
안타깝게도 조금만 대화해보면
주위로부터 대접만 바라고, 배려할 생각은 없는
마음이 편협한 어르신 들도 많은 것 같다.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배움을 얻고,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알게 된 사람들이
어른인 것일까?
나는 아직도 어른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어제보다는 나은 내가 되기를.
오늘보다는 성장한 내일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도 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어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