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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Aug 02. 2023

아들의 첫번째 방학

자기 전 먹은 회오리 감자가 부대끼는지,

아이는 앉았다, 일어섰다, 복도를 왔다갔다 하더니

이내 침대에 와 다시 앉는다.

등어리를 쓸어내려주니,


- 엄마 출장 갔을 때는 아빠가 이렇게 안해줬어. 그냥 참고 자라고 했어.


뒤늦은 고자질을 한다.

이렇게 엄마의 손길이 하나 아이의 마음에 남은 걸까.


- 이제 누워봐, 배 만져줄께. 다리는 펴고.


베개를 좀 높이고 한 쪽 손으로 내 옆 머리를 받친 후

다른 한 쪽 손으로 가슴부터 배꼽까지 쓸어내린다.

이제 '엄마 손은 약손, 아가 배는 똥배' 노래는 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엄마 노래는 안해도 되' 라지 않은가.

예, 원하시는 대로.


배를 수 십 번 쓸어내리기를 반복하며

아이의 옆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의 얼굴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동그란 이마부터 콧등, 작은 솜털이 보송히 난 볼,

콧물이 말라붙은 콧구멍 아래부터 도톰한 윗 입술까지.

처음보는 사람처럼 흥미롭게 그 옆 얼굴을 관찰하고 있자니

나비 날개처럼 흔들흔들 거리는 속눈썹이 보인다.


깜박...깜박.깜박.....깜박..깜...


눈을 감고 3초 정도 있더니 이내 다시 뜬다.

그렇게 또 깜박 깜박 거리더니 피곤한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코에서도 깊은 숨이 새어 나온다.


오늘도 너는 자랐다.

크느라고 참 고생이 많았다.


아이와 둘이 서울 나들이를 한 방학 두번째 날이었다.

방학 스케줄을 촘촘히 짜야 한다던데,

게으른 엄마는 출장 핑계를 대며 맨 몸으로

초등학교 첫번째 방학을 맞고야 말았다.


그래, 와라. 방학.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부딪쳐보자!


폭염 주의보가 연일 이어지는 날씨라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림책 전시는 예상보다 재미있던지, 아이는 신나게 에너지를 쏟으며 전시를 즐겼다. 나도 이제 아이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할 수 있는게 더 많아 지겠구나 하며 뿌듯해 했던 한시간 이었다.


높았던 텐션은 기념품 샵과 솜사탕 기계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앞에서 서서히 다운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아가들만 들어갈 수 있는 키즈카페에 들어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분노와 짜증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 원래 계획하던 일도 아닌데 왜 이거 가지고 화를 내니?

    재밌게 보고 이게 무슨 행동이야!


수양이 모자란 엄마답게 로비 한복판에서 아이를 힐난하고는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는 아이를 두고 혼자 자리를 뜬다. 흘끗 뒤돌아보니 그 자리에서 눈만 나를 보고 있다.


- 왜 그래, 그렇게 키즈카페 가고 싶어? 그럼 내일 너 좋아하는 데로 가자~


아이의 표정은 풀리지 않는다.

어떻게든 끌고 점심을 먹을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약 100미터 정도의 가는 길이, 정말 타들어갈 듯이 더웠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걷는 수행자는 나와 아들 뿐인듯 했다.

원래 가려고 했던 레스토랑을 멀리서 보니 나 원,

이 찜통 더위에 바깥 자리에서 웨이팅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안 돼, 안 돼.


패스하고 그 옆에 있는 한식당으로 간다.

그 곳은 웨이팅이 최소한 실내에 있었다.

77번의 대기표를 받고 길게 늘어선 대기 의자에 앉는다.


-48번 손님!! 48번이요!


나는 언제쯤 밥을 먹을 수 있게 될까.

불현듯 아침에 집을 나오며 아이가 김에 싼 밥 조금과 사과 반쪽 밖에는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택시에서 먹은 마이쮸 몇개와 돼지바가 다였다.

그제서야 아이의 짜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배가 고팠구나.


배가 고픈데 전시를 재밌게 보느라 힘을 다 쓰고

그 와중에 땡볕을 걸어왔으니

지칠만도 하겠다.


계속 왜 그러냐고, 많이 배가 고프냐고  말을 걸어보았지만

'아 몰라~!!!' 라며 손을 뿌리치던 아이였다.


나는 그저 유리문 밖의 눈부신 돌바닥과 흰 구름, 탈색될 것 같은 파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5분쯤 지났으려나

아이가 작은 머리를 내 어깨에

톡, 기대왔다.


분노가 한꺼풀 벗겨졌다는 신호였다.

얼른 팔을 들어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 힘들어....


작은 소리로 아이가 말한다.


- 맞아, 힘들지? 배고프고 덥고 힘들고...조금만 기다리자



길고 긴 웨이팅 후 우리는

고등어구이와 감자전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청포묵을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아이가

또 사랑스러운 건 뭔지.


밥을 먹고 배가 볼록하게 나온 아이는

이제 평정심과 여유를 되찾고는,

아까 돼지바를 계산할 때 카운터 옆에서 발견했던,

연기 비누방울을 사달라고 조른다.

그리고 아까 줄이 길어서 못산 솜사탕도 사달라고 한다.


- 그래, 그래.


고생한 아이에게 약해지는 엄마다.



그림책 전시를 보고 장난감과 솜사탕도 득템했지만,

오늘 아이는 이유없이 화가 나고

짜증이 북받치는 감정도 경험했다.


시간은 걸렸지만 화와 짜증을 걷어내고

힘들다는 솔직한 마음을 말하기도 했다.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되지 않을 때

왜 안되냐고 엄마에게 떼를 부렸지만

대부분 원하는 대로 되었고

안된 것은 조금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받아들이고

'그럼 그건 다음에 하자' 라고 넘기기도 했다.


악세사리 가게에서 엄마가 목걸이를 해보고

얼마냐고 가격을 묻고, 그리고 이쁘다고 하니까, 대뜸


- 엄마 내가 사줄께.


라는 말로 아줌마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고


- 그렇게 돈을 다 쓰다가 돈이 다 없어지면 어떡해?


라는 엄마 말에


- 벌면 되지?


라는 당찬 대답이라니.

초등학교 1학년 치고는 너무 훌륭하다.



너와의 택시 안 끝말잇기는 꽤 하이레벨이라

엄마는 집중하느라 멀미를 심하게 했어.


너도 오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느라

참 많이 수고했다.


오늘 엄마랑 보낸 5시간 동안

마음의 키가, 위로든 아래로든 옆으로든

조금은 자랐을거라 생각해.


사랑해 우리 아들

크느라고 고생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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