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엔 잘 챙겨 먹고 싶었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요리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지만, 소박하게나마 내 손으로 준비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예전에는 한창 건강문제로 현미 생채식을 하기도 했는데,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다. 아침은 출근준비를 하면서 아이들 챙기느라 항상 대충 먹었고, 점심은 되는대로 사 먹고, 저녁은 항상 뭐든 빨리 준비할 수 있는 메뉴여야 했다.
먹는 것은 그냥 해치워야 하는 귀찮은 일이었다. 배고프지 않기 위해 대충이라도 먹어야 했고, 아이들도 얼른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 했기에 먹여야 했다.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과정에 감정이라고는 없었다. 왜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지 그저 귀찮다는 생각뿐.
퇴사를 한 이후 '먹는 일'에 시간을 좀 들이고 싶었다. 먼저 아침식사부터 잘 챙겨 먹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국 끓이고 밥 하겠다는 각오는 아니고, 과일이나 커피를 곁들인 소박하지만 건강한 아침식단을 챙기고 싶었다.
퇴사 다음날, 그 다음날 아침
대단한 아침식사는 아니지만 과일을 깎고, 미리 쪄놓은 고구마 껍질을 까고, 라떼 믹스를 한잔 타서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렇게 차린 식탁에 앉으니 소소한 행복감이 차오른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고 맛있게 먹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지, 깨닫는다.
게다가 아침을 앉아서 먹는다니. 회사에 다닐 때는 식탁에 아침으로 먹을 빵이나 과일 따위를 급히 준비해 두고 출근 준비와 아이들 등교 준비를 챙기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서서 먹기 일쑤였다. 아이들에게 '옷 입어, 양말도 신고' 라고 말하며 나도 옷을 갈아입다가 나와서 한입. 옷이 맘에 안 든다느니, 양말이 뒤집어져 있다느니 하는 아이들의 요구를 해결해 주느라 돌아다니다 또 한입. 그렇게 바삐 돌아다니면서 아침을 때우고, 나갈 시간이 되면 다 식은 커피를 원샷으로 마시고는 출근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은 이렇게 조용히 아침을 앉아서 먹을 수 있다니. 이 시간이 좋아 나는 몇 분이라도 아이들을 더 빨리 등교시키기 위해 서두른다. 그동안 뭐가 그리 바쁘고 항상 해야 할 일들 투성이였을까. 나는 항상 예민해져 있었고 세상 모든 일들이 다 내게 맡겨진 것처럼 버거웠다. 앞으로도 먹고사는 문제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각오는 하고 있지만, 아침 식사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나는 회사를 잃고 아침 식사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