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칠 Feb 25. 2023

옆에 없는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것

일본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4)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 정거장을 지나 다음 정거장까지 2분.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전화를 받고 끊기를 3분. 아직 내 옆으로 나와 함께 하차한 사람들이 출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길어봤자 5분이었다. 엄마로부터 내일 예약된 병원 진료를 취소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주고받은 문자와 짧은 전화통화에서도 다른 설명을 듣지 못했다. 엄마는 지금 바쁘다며 통화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문자도 그렇게 끊겼다. 바로 마음이 불안해졌다. 




 엄마의 연락을 기다리는 나의 체감시간은 딱 두 배로 늘어났다. 20분은 기다린 줄 알았더니 10분이 지나있었다. 타지에서 이유도 모른 채 병원 진료를 취소한 엄마의 연락을 기다리는 나의 시간이었다. 결국 밤이 늦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실 일본에 오기 전부터 엄마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릴까 봐 걱정했었다. 병원 가는 길이 멀어서 엄마는 가야 할 때마다 가기 싫은 티를 냈다. 그래서 병원만큼은 더욱 같이 가려했다. 그러다 이번 여정으로 인해 처음으로 같이 못 가게 되었다. 혼자 먼 길을 다녀와야 하는 엄마가 눈에 밟혀 차표라도 끊어주고 싶은 마음에 숱하게 해외를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로밍까지 신청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기분대로 화를 냈다간 지금 보다 더 고약한 감정에 휩싸이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차분히 했다. 그리고 문자를 남겼다. 최대한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서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듯이. 내가 처음으로 로밍을 한 이유와 그래서 아무 설명 없이 병원 예약을 취소하겠다는 엄마가 얼마나 걱정스러운지, 엄마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줄줄이 적어두었다. 문자를 보면, 답을 하겠지 싶었지만, 엄마는 그날 저녁까지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고 그래서 답도 없었다.


 결국 다음 날 내가 다시 전화했다. 화가 나서 먼저 연락하지 않으려 했다. 걱정하는 마음은 화에 불타버린 지 오래였다. 처음엔 설명 없는 통보식 전달에 화가 났다. 예약을 취소한 엄마의 속을 모르겠어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엄마의 건강보다 중요한 일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예약을 취소한 엄마의 행동이 점점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자신에게 무심한 엄마에게 화가 났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차분히 의례적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감정적으로 굴지 말자. 일을 키우지 말자. 하지만 엄마는 이미 내가 예민해져 있다는 걸 아는 듯했다. 엄마는 어제 못해준 설명을 전해주었다.


 알고 보니 상황은 단순했다. 엄마가 열심히 준비해 온 면접시험이 이 주 금요일로 잡히는 바람에 남은 기간 동안 집중하고 싶어 예약을 연기했다고 한다. 다시 잡은 예약일은 면접이 끝난 뒤 돌아오는 다음 주였다. 깔끔한 엄마의 설명에 나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처음부터 취소가 아닌 연기라고만 말했어도 이렇게까지 감정이 널뛰지는 않았을 텐데! 날카로워진 기분이 누그러진 걸 서로 느끼며 전화통화를 잘 마무리했다. 어쨌든 해피엔딩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