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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an 17. 2023

나는 불자일까

불자가 된다는 것

 종교를 물으면 불교라고 답한다. 언제부터 불자가 되었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종교가 불교인 사람을 불교도, 불교신자, 불자 등으로 부르는데 절집 안에서는 불자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기에 불자로 통일해서 쓰겠다).  나의 불교연대기(또는 불교섭렵기)는 차후에 쓸 예정이지만 줄이고 줄여서 이야기하자면 어릴 때부터 절에 드나들었고, 성인이 되어 종무원(절에서 일하는 일반인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절 사보에 글을 쓰고 있다. 한마디로 전생애에 걸쳐 불교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종무원으로 일할 때도 내가 정녕 불자가 맞는지 의문이 떠오르곤 했는데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발단은 은유 작가의 강연회였다. 은유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제일 처음 읽은 책은 <쓰기의 말들>이었다. 나는 몰랐는데 예능 <효리네 민박>에서 배우 박보검이 읽어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나는 (평소 잘 보지도 않는) 리디북스를 통해 우연히 보게 되었고 깊은 인상을 받아 작가가 쓴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주로 칼럼을 찾아봤다. 단행본은 미처 보지 못했다. 그러다 다른 일에 치여서 한동안 잊고 지내다 2022년 11월에 강서구청에서 진행하는 <강서 행복한 인문학당>이란 프로그램에 은유 작가가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신청했다. 굉장히 큰 기대를 안고 강연을 기다렸다. 강연은 기대보다 좋아서 잊고 있었던 팬심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강연회에는 나 말고도 많은 팬들이 있었다. 강연 끝나고 즉석 사인회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도서관에 가서 작가님이 쓴 단행본  <올드걸의 시집>, <다가오는 말들>을 빌렸다. 읽으면서 많이 힘들었다. 다른 사람이야 아프든 말든,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게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 그렇다고 앞으로도 타인의 고통을 대면하며 살아갈 자신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강렬해서 자꾸만 책을 덮고 싶었다. 책을 읽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다가오는 말들>은 다 읽지도 않고 반납했다. 나중에 다시 은유 작가의 책을 볼 때가 오려나. 비록 다 읽지 못했지만 책을 읽으며 아, 은유 작가의 글은 정직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들도 많은데 은유 작가의 글을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작가를 온전히 담고 있다고 할까. 2시간가량 진행된 강연에서 작가님은 자신이 쓴 책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 죽음으로 내몰린 현장실습생,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미등록 이주민 등 피눈물 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유 작가는 한국사회가 외면하는 고통과 슬픔을 주시한다. 그것들은 가난해서, 공부를 못해서, 외국인이라서, 여자라서 우리 사회가 용인하는 차별과 폭력에서 발생한다. 작가님은 지금도 종종 시위에 참여한다고 한다. 은유 작가는 앞으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회 모퉁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시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혹여 나중에 비판을 하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을 걸고 답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멋진 사람이고, 그가 쓴 글은 꾸밈이 없다.


 절 사보에 들어갈 글을 쓰다가 문득 부끄러워졌다. 내 글은 내 생각과 행동을 정직하게 담고 있는가? 이에 맞다고 답할 수가 없었다. 불교에 대해 잘 아는 듯, 확신하듯이 쓴 문장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쓴 글들이 얼마나 많은지... 선무당처럼 펜을 휘둘러댔다. 불교 인물이나 불교사 등 지식 차원의 글은 열심히 자료조사를 해서 쓰면 그만이지만 신심, 수행, 자비 같이 실천의 영역에 있는 것들은 섣불리 말하면 안 되었다.  <깨달음이 뭐라고>의 저자는 스스로를 '불교 마니아'라고 칭한다. 나는 과연 친 불교적인 사람일까, 불교 마니아일까, 불자일까. 나는 불교가 좋다. 그런데 단지 이것만으로 나를 불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정직한 글을 쓰고 싶다. 그러니 불교와 나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야 봐야 한다.  


 종무원으로도 일했으니 불교 책은 그럭저럭 읽은 편이다. 그런데 읽고 나면 가슴 한편에 허전함이 남았다. 2500년 전에 발생한 불교가 지금의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원론적으로는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지만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해야 할지 난감했다. 윤회니 업장이니 하는 말들은 미신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선불교의 일화나 공안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하지만 경전과 스님들의 말씀이라는 권위에 지레 쭈구리가 되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름 현실적이라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조금 봤는데 딱히 와닿지 않았다. 불교의 무게에 짓눌려있다가 최근 성태용 교수의 <더 나은 오늘을 위한 불교 강의>를 읽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금, 여기, 내게 구체적으로 생생히 와닿는 불교를 고민하기로.  불교를 요리조리 고민하고, 뜯어보고, 실천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불자가 될지 결정하기로 했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싶다. 또한 누가 물었을 때 내가 왜 불자가 되었는지 아니면 안 되기로 했는지 명확하게 이유를 말하고 싶기도 하고. 나는 내 선택의 이유를 알고 싶다. 설령 나중에 불자가 아닌, 불교 마니아나 친불교적인 무교로 남겠다 하더라도 고민의 흔적은 값질 거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무엇을 결정하든 불교라는 끈은 남는 것 같다. 그럴것이다. 부처님 말씀은 언제 들어도 좋으니 말이다. 



불혹을 넘어 갑자기 찾아온 물음, 불교. 

욕망으로 드글거리는 내가 어쩌다 불교 글로 브런치애 도배를 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럴 때가 되었나보다 라고 생각하는 수 밖에.



어찌되었든 

2023년, 나는 불자가 될지 말지 고민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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