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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근 Jul 19. 2022

예능의 고령화, 나이들어가는 출연자들

텔레비전의 황혼기, 미디어 세대교체의 징후

최근 예능의 고령화가 화제다. 아마도 런닝맨 출연자들의 이야기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다. 20년 전의 TV에서 보이던 이들이 20년 후에도 여전히 보인다. 심지어 멤버 구성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출연자들이 토로했던 것처럼 기묘한 현상도 함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문득 돌이켜보니, 막내를 자처하는 이의 나이가 무려 30, 40대인 것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이것을 희화화하며 가볍게 넘어갔지만 여기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혹자들은 여기에 주목하여 많은 진단을 내린다. 예능계의 보신주의 때문이다, 방송사가 모험을 두려워한다. 세대교체의 실패다 등등 여러 가지 말들이 있는 걸로 안다. 물론 모두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좀 더 근본적인 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고, 누군가가 제대로 짚어낸 바 있는, 그리 놀랄 것 없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이 글도 간단히 마무리지어질 것이다. 필자의 언어로 교정하자면, 나는 이 예능의 고령화 현상을 좀 더 큰 시대적 흐름의 지류(支流)로 판단한다. 즉 예능계에서 일어나는 고유한 현상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 예능이라는 미시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앞서 잠시 예능계를 벗어나 다른 채널로 돌려보자. 우선 편성표를 보면 프로그램들부터가 상당히 오랜 양식이다. 익숙한 취향이면서도 시청의 경험에 비추어 낯선 뒤바꿈을 창출할 뿐인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수 프로그램인 <동물농장>이나 <개는 훌륭하다>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사람'을 살펴보자. 드라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출연자는 나이가 제법 있다. 굵직한 프로그램들의 MC의 면면을 보면 상당한 경력자이며, 심지어 얼마 전에 돌아가신 송해 선생님 역시 40년 가까이 전국노래자랑을 맡으셨다. 방송 인력의 경우, 신규 유입은 지속적이지만 프로그램 운영에 내재한 사유 방식은 퍽 오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결과이다. 방송의 관습을 견디지 못한 자들은 이미 방송국에서 뛰쳐나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재는 어떠한가? 오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가요들이나 혹은 그들에게 익숙한 생활 이슈들이 주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이 퍼즐의 공식을 완성하시청자들은 어떠한가? 마찬가지다. 방송이 청자를 따라가는 것인지 혹은 그 반대로 청자가 방송을 따라가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시청자와 방송이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은 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로부터 여러 가지 가설가능해진다. 그전에 앞서, 빠른 결론을 위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혹시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예능을 보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행여나 그들의 취향이 달라졌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웃음, 눈물, 폭력, 선정, 판타지 등의 요소는 인간의 근원적인 정서이다. 즉 '웃음'의 원초적 양상은 그대로이며 단지 웃음을 소비하는 양상과 내용, 그리고 이 경우엔 '미디어'까지 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교정되어야 한다. "젊은 세대는 '어디'에서 '어떤 양태'의 예능을 소비하는가?" 실제로 기존에 제기된 방송계의 우려와 달리 문화콘텐츠의, 혹은 크리에이터의 시장은 오히려 새로운 양상으로 폭발하며 레드오션이라고들 한다. 다시 말해, 젊은 세대의 창조적 열정은 기성의 판에서가 아닌, 전혀 새로운 곳에서 분출되고 있다. 인식의 간극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다음의 두 데이터는 이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수치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10, 20대는 스마트기기로 방송 시청을 선호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반면, 50대 이후의 세대로 들어서며 급격히 줄어 한 자릿수로 들어서고 있다. 세대에 따른 스마트폰 수용률의 차이, 달리 말하자면 사용하는 매체가 크게 상이하는 뜻이다. 특히, 다음의 설문은 극명하게 갈리는 미디어 인식을 볼 수 었다.



이 설문에서 스마트폰과 TV는 아주 정확히 역전된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국 문화의 거대 소비자층인 베이비부머 세대(천만 명)가 있는 한 TV는 한동안 '메이저 미디어'로서 군림하겠으나 앞으로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리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상으로부터 몇 가지 담론 설정이 가능해진다. 먼저, 필자는 이 시대를 텔레비전의 황혼기로 진단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문화콘텐츠 연구자들이 퍽 오래전부터 여기에 주목해왔다. 예컨대 먼 과거의 '마차'는 '자동차'의 등장 이후 경쟁력을 상실했으나 관습/취향에 의한 선호로 인해 수십 년동안이나 자동차와 함께 공존해왔다. 동일한 맥락에서 TV가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지닌 미디어로서의 유용성이 새로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텔레비전은 지난 세대를 대변하는 역사적 매체로 기억되며 우리의 일상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논의를 파생시킨다. 우선 세대간의 문화적 차이와 그로 인한 수직적 단절까지 말해봄직하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MZ세대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은 MZ들의 문화 향유가 콘텐츠적 층위를 넘어 미디어적 층위에서 분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분리는 어떤 의미론 공간적 격리이기도 하. 미디어의 본질적 구조가 수용자의 문화적 양식까지 결정하는데, 일방향성이 주된 특징이었던 전통적 미디어와 달리 오늘날의 미디어는 쌍방향성은 물론 그들이 향유하는 장(場)까지 마련해준다. 따라서 미디어를 여전히 일상의 일부로 파악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미디어를 자신이 진입할 수 있는 별개의 세계로 인식한다는 중요한 차이가 발생한다. 즉 젊은 세대들은 두 개의 세계를 사는 셈이다. (메타버스 담론은 이러한 입장에서 유효하다.) 때문에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젊은이들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기성세대의 눈에 비춰지는 젊은 세대의 수동성과 무력함의 인식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듯, 그들은 이미 다른 콘텐츠 인식과 향유 방식을 바탕으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편 예능(혹은 웃음)으로 한정하여 젊은 세대에게서 눈에 띄는 현상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간단히 정리해보면, 두 가지의 거시적 맥락이 눈에 띈다.


첫번째는 물론 웃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이들. 개그맨이나 연예인과 같은 전문직업꾼들이 여기에 속한다. 딱히 비주류라 단언하기 어렵지만 기성세대의 질서에서 확고히 자리잡지 못한 이들은 젊은 세대의 문화권으로 뛰어들어 자신들의 영역을 개척하고 빠르게 확장하였다. 이들은 이미 '웃음을 이끌어내는 테크닉'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MZ세대가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캐릭터'로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기에 젊은 세대의 문화에 편입되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웃음 그 자체의 불변성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가하던 캐릭터의 매력이 종합되어 일어난 결과이다.


그러나 필자가 눈여겨 보는 것은 새로이 출현한 두 번째 양태이다. 젊은 세대의 웃음은 기존의 전문직업꾼에 의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도 생산된다. 현 시대의 향유자는 크리에이터라는 무정형의 생산자로부터 촉발되는 다양한 모습을 소비한다. 즉 크리에이터가 생산하는 다채로운 이미지 안에 희노애구애오욕, 즉 '웃음'도 함께 들어 있는 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능이라는 장르적 형식은 비명시화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필자는 여기가 장르적 형식의 해체가 이뤄지는 지점이게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한다. 다만 '기존의 해체'는 곧바로 새로운 '수렴'을 요구하는데, 이 경우에는 새로이 재설정된 구심점이 결과적으로 '캐릭터'이기까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에이터나 유튜버(혹은 버튜버)의 등장과 그를 향한 남다른 충성/애정 등과 같은 의미부여 과정은 단순히 미디어의 변화가 빚어낸 결과가 아니라 일종의 시대적 흐름이다. 아울러 그런 의미에서 전통 시대의 미디어에 부합되는 직업양식인 개그맨과 텔런트 등은 언젠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자료

2021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보고서

박성봉, 대중예술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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