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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근 Aug 06. 2022

탑건 : 매버릭을 보며, 가벼운 감상

낭만과 스펙타클의 하모니,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시간을 내어 탑건 매버릭을 봤다. 매우 잘 만들어졌다. 이 시국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천만을 찍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간만에 느끼는 왕도(王道)의, 실로 만족스러운 영화 감상이었다.



탑건 : 매버릭의 이야기는 참으로 진부하다. 이전 작을 보지 않았음에도 영화의 초반부만 보면 결말이 곧바로 예측될 정도로, 뻔한 서사적 형성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아들의 관계, 지나간 연인, 불가능을 넘어서는 초인적 의지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주인공의 능력, 오래된 라이벌과 새로운 신성(新星)까지, 실로 낡은 클리셰들이 잘 버무러져 있다. 그러나 자칫 식상할 수도 있는 것의 오래된 조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참으로 잘 만들어졌다. 나에게 없었을 터인 향수를 일깨우는 기분이다. 비유하자면, 분명히 이전에 맛본 적 없었을 숙성 와인을 맛보면서 느끼는 묘한 그리움이라고 할까. 


어디 그뿐인가. 영화에 내재된 주제의식과 그것을 전달하는 서사도 참으로 인상적이다. 드론 조종이 주류가 되는 시대의 물결에 떠밀려 은퇴할 것을 종용받은 조종사, 매버릭. 한때는 전설이라 불리었던 그는 작중에서 시대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체계에도 저항하며 여전히 대령이라는 말단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이나 한편으론 그 자신도 무상한 세월을 여실히 느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연히 훈련교관이 된 매버릭에게 이중의 내적/외적 서사가 주어진다. 시대와 삶의 변화를 체감한 그는 고뇌하고 갈등하며 서서히 변화한다. 그러나 동시에 외부에 주어진 미션, 즉 스스로의 불가능을 극복한다. 전자만을 이야기했다면 향수를 자극했을 수는 있어도 그저 오래된 감정을 되살리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반면에 후자의 이야기만이 있었다면 단순한 전형적인 스펙타클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만 수행했어도 충분히 나무랄 것 없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나에 아울러 빼어난 수작으로 만들어냈다. 이것이 노소(老小)를 가리지 않고 양쪽 모두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이지 않나 싶다.


그러나 좋은 서사나 주제의식, 화려한 스펙타클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힘은 궁극적으로 배우 한 사람으로부터 나타난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며 감탄하고 이런 저런 평가를 내렸음에도,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톰 크루즈가 쌓아온 역사와 아우라가 영화 전체에 걸쳐 스며들어 있었던 까닭이다. 배우가 딱히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톰 크루즈를 그간 지켜보며 쌓인 관객들의 역사가 영화 내에서 주어진 배역인 매버릭의 아우라를 성립케 한다. 그는 완벽한 타인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 우리의 삶 일부로 들어와 무수한 경탄을 자아내고 때때로 위로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는 결코 타자화되지 않는다. 심지어 탑건은 톰 크루즈 전설을 알리는 첫 작품이 아니던가. 일찍부터 그를 알던 이들에게는 더욱 짙은 향수가 내재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모두 감상하고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왕도의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한다면 문화콘텐츠는 이런 방향이라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법은 이미 익숙해진 것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 그러나 문화콘텐츠 기획자인 우리들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갈구하는 경향이 있다. 기획자 뿐만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전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러나 탑건은 이야기나 캐릭터의 진부함 따윈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는다는 듯 단번에 그런 우려를 날려버렸다.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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