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기념일'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을 때,
해마다 그 일이 있었던 날을
기억하는 날'이라고 나와있다.
오늘은
글쓰기가 지닌 '치유'의 힘이 필요한,
울적한 기념일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8월 1일은 나의 아들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건강하게, 어디 이상 없이
무사히 태어난 아이가
누워만 있다가 목을 가누게 되고,
허릿심이 생겨 스스로 앉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
두 발로 아장아장 걷게 되는
놀라운 성장의 과정을 돌아보고,
감사하게 되는 날.
몇 걸음 걷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던
유아 시절을 지나
날듯이 뛰어다니던 소년기를 마무리하고,
이차 성징이 시작되는 청소년기에 들어선
아이의 성장에 새삼 고마움과 기특함을 느끼고
표현하게 되는 날.
분명 기쁨과 감사만 가득할 만한 날인데,
엄마인 나의 마음 한구석은
늘 해소되지 않는 슬픔과 서러움에
휩싸이는 날이기도 하다.
만삭의 몸으로
아이 낳기 이틀 전까지 출근해야 했다.
출산 예정일 전 마지막 검사를 위해
병원에 찾아간 날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아,
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진통의 고난을 경험할 필요가 없었던 점은
좋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마취로 의식이 없었기에
아이가 나온 순간 안아보는 경험 역시
할 수 없었다.
보통은 출산으로 임신중독증이
대부분 사라지는데
하필 나는 만 명 중 하나에 들어가
고혈압으로 쇼크가 와서 죽을 뻔했다.
혈압이 너무 높아
심한 두통과 가슴 두근거림이 느껴져
밤중에 응급실에 가지 않았다면
정말 죽었을 거다. 식물인간이 되었거나.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죽음의 공포와
바닥이 안 보이는 암흑 속에서
끝없이 추락 중인 감각을 느낀다.
가족 중 누구도,
심지어 그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아이의 아빠조차
기쁜 날 온전히 기뻐할 수만은
없는 나의 마음을,
그 외로움을
공감하지 못함을 발견하게 되는 날.
결국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구나.
홀로 다독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