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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로 Jul 18. 2018

에어컨을 틀 수 없었던 상견례

결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1 적막


식당 앞에 도착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왜 이렇게 무거운가. 잘 열리지가 않는다. 손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흔한 유리문 하나 여는데 무슨 손아귀에 힘까지 줘야 하나 싶은 생각에 피식, 옅은 웃음을 삼켰다. 가까스로 들어간 식당 안은 마치 다른 세계인 것만 같았다. 부연 연기가 눈앞을 가리는 듯했고, 까닭을 알 수 없는 막막함에 한 발짝을 내딛는 것에도 '조심, 조심'이 묻어 나왔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미 도착해 예약된 방에 앉아 있다고 했다. 그 방을 가리키는 식당 지배인의 손가락이 왠지 모르게 야속하게 느껴졌다. 거기를 지금 나 보고 들어가라는 건가요? 숙제 안 한 놈 나오라는 선생님의 손가락질만큼이나 어쩐지 손가락 마디마디에 차디찬 냉혹함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사지로 끌려가는 어린양의 모습을 하고 예약된 방 문을 스르르 열었다.  


결국 이렇게 다 모였다. 무슨 대치 국면도 아닌데, 이 편과 저 편이 너무 확연하다. 그래 자리 편성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섞어 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방 안쪽부터 어머니들이 마주 보고, 그 옆으로 아버지들이 마주 보고, 나와 수현은 문에 가까운 쪽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래도 문 쪽에 가까우니 조금 안심이 된다고 할까, 이상한 안도감이 끼쳐 들었다. 언제든 뛰쳐나가리라.


식사 주문은 이미 되었고, 찬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물병을 들고 흩어져 있던 컵들을 모아 하나씩 잔을 채웠다. 물병을 든 손이 파르르 떨린다. 컵이 바뀔 때마다 떨림은 더 심해졌고, 그 물줄기를 보고 있는 심정도 따라서 흔들린다. 아, 이제 시작이로구나. 물 채워지는 소리, 숨길 수 없는 손 떨림, 찬물을 끼얹는 적막, 이 모든 것들이 상견례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2 사돈


어른들이 먼저 사돈지간에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는 인사를 하다 말고 옆에 앉은 나를 쳐다보았다. 이를 어쩐다. 그 눈빛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른이라고 어디 이 자리가 편하겠는가. 부모님은 좀 다르시겠지 하던 내 어설픈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숨을 곳이 없다. 숨 쉴 틈도 없다. 막히는 숨이 다시 적막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때 아버지가 느닷없이 기침을 했다. 에어컨 바람 때문이라고 한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은 정지시켰다. 어디선가 선풍기가 한 대 들어와서 두두두, 고개를 회전하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뙤약볕의 기세가 유난히 사나웠던 날, 상견례 의상이라고 차려입은 정장에 목에는 넥타이까지 둘렀는데. 이제부터는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이 까마득한 사막을 지나가야 한다. 더운 기운이 숨통을 막는다.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몽글몽글 맺히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의 적막을 깨고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회심의 카드로 내민 것은 아들 자랑. 한 장 한 장 바닥에 사연이 깔릴 때마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짓지만 아무런 표정은 없었다. 자기 자식이 그래도 꽤 괜찮은 녀석이라는 어머니의 일장연설이 끝나고, 거기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장모님은 의외로 딸 흉을 보기 시작했다. 이게 웬일인가. 수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곳에도 시선을 두지 않았다. 나도 수현도 상견례 자리에서 이렇게 오래 고개를 떨구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을 줄은 몰랐다.  


자식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제 나름으로는 어른들 분위기를 좀 누그러뜨렸나 보다. 그 뒤로 시간은 제 갈 길을 그저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다. 다만 문 쪽에 앉은 젊은이들만이 소용돌이를 느낄 뿐이었다. 그 휘말리는 물살에 맘도 속도 동시에 울렁거렸다. 부모님들은 상견례 때 나눠야 할 법한 이야기들이 과연 있는가 의심이 생길 정도로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이제부터는 어른들의 연령에서 비롯된 관록과 여유가 상견례를 이끌어 나갔다. 그렇게 부모님들이 보내온 세월이 시간을 채우고 공간을 매웠다.     



 #3 정장


어쨌거나 상견례는 끝이 났고 어른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나와 수현은 약간의 소회도 나누고 서로 힘이 든 마당에 피로도 풀 겸 아직 집에 안 들어가고 남아서 몇 마디 얘기를 더 나눴다. 그러나 저러나 아침 일찍부터 입은 정장에 넥타이가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하기 짝이 없었는데(평소에는 입을 일이 거의 없으므로), 하루 종일 입고 여기저기 다니고 오랜 시간 앉아서 격식과 의례에 몸을 맞추려 애를 쓴 탓인지, 밤이 이슥할 무렵에는 거의 이제는 제법 몸에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크게 깨달은 것까지야 없고, 아, 이제 이렇게 상견례도 결혼도, 정장이나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고 흐름을 따라서 몸을 맞추어 배우고 익히면, 그게 또 어느새 자연스러운 것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결혼이 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상견례씩이나 마친 이후라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리문 하나 열기에도 버겁던 아까의 그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닥칠 일들은 이 외에도 많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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