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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로 Jul 19. 2018

부동산 중개인 표정이 굳었다

집을 구했다

#1 사전 탐색

포털 사이트 ‘부동산’ 페이지를 들락날락한 것은 사실 두어 달 전부터 해 오던 일이었다. 앞으로 살게 될 동네 지도를 스크린에 띄워 놓고, 매물이 어떻게들 나오는지 주시하면서 대략의 시세도 파악해 두고 있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굳이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들르지 않아도 사전 탐색이 얼마든지 가능하니 말이다. 포털에서 확인한 바로는 다행히 우리가 살게 될 동네에 매물이 꽤 나와 있었고, 시세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비교적 안정세였다.

사전 탐색을 마치고 몇 군데 유력한 공인중개사 연락처를 따로 적어 두었다. 매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들 위주로 추리니 대략 서너 곳으로 좁혀졌다. 집 계약을 내 손으로 직접 해 본 것은 처음이라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는 했는데 막상 공인중개사에 전화를 하려니 심호흡을 몇 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포털 사이트 뒤질 때랑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첫 번째 통화에서, 준비한 말들을 외운 듯이 읊었다. 전세로 알아보고 있고요. 대략 가격대는 이 정도? 조만간 결혼할 거라서... 마지막 말은 안 할 걸 그랬나? 굳이 안 밝혀도 될 걸 괜히 말한 건 아닐까 약간 후회가 되기도 했다.  

포털에 매물을 잔뜩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중개인이 발품을 많이 팔기도 하고 이 지역에서 나름 잔뼈가 굵다는 반증 이리라. 역시 첫 번째 통화에서, 몇 마디 한 것도 아닌데 벌써 견적을 뽑았다는 듯이 속사포로 물건을 하나씩 소개해 나갔다. 그리고 당장 볼 수 있냐고 물어 온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 그럼 이제 빨리 구해야 한다. 오늘 언제 시간이 되느냐? 역시 결혼 얘기는 꺼내는 게 아니었다. 여지없이 오늘 저녁에 당장 만나기로 했다.  


#2 정탐꾼  

중개인은 자기가 꺼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벌써 눈빛에 자신감이 서려 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어찌나 그 발걸음이 경쾌한지 뒤따라 가는 나도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설레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역시 중개인이 안내한 첫 번째 집은 매력적인 곳이었다. 내부도 깔끔하고 구조도 잘 빠진 데다 무엇보다 남향에, 가격도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왔다. 왜 그렇게 서둘러 나를 보자고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우선, '마음에 드는 것 같다'는 약간 애매모호한 평을 넌지시 던져 놓고, 근데 나 혼자 결정은 못 하니 여자 친구와 한 번 다시 와서 보고 싶다고 얘기를 해 놓은 다음, 무슨 한시바삐 어딜 가야 하는 사람처럼 고맙다는 인사만 나지막이 건네고는 중개인과 작별을 했다. 이제 처음 본 것 아닌가. 연락처 적어 둔 부동산이 또 있기도 하고, 매물은 아직도 많으니 벌써부터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진정을 좀 시키고 앞으로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몇 군데 부동산을 더 다녀보면서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각각의 부동산에서 소개해 주는 매물을 보러 다니는데, 어쩐지 a부동산과 b부동산 중개인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눈치를 채게 되었다. a부동산에 갔다가 어느 정도 시간차를 두고 b부동산에 갔는데, b부동산 중개인은 이미 내가 어느 집들을 보고 왔는지 알고 있었다. 매물은 그렇게 서로 알음알음 공유하고 계약이 성사되었을 때 중개 수수료를 나눠 가지는 방식으로 공조를 하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신혼부부가 집을 구하러 다니고 있고, 어느 정도의 가격대의 집들을 원하는지가 이 지역 부동산 중개인들 사이에 놓인 그물망에 포착된 것이다.  

이제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싶을 정도로 줄줄이 그득하니 들어차 있다. 하여 불현듯 쓸데없는 치기가 솟구치는 이유인즉슨, 부동산끼리의 관계망이라도 좀 미리 알아 두면, 나 같은 사람은 그래도 두 번 일 안 해서 좋고, 괜한 오해 안 사도 좋고 할 텐데 말이지 하는 투정이 생겨서였다. 기껏 a에 가서 실컷 소개를 받고, b에 또 순진하게 가서 그 묘한 눈빛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하는 일도 안 겪을 테니 말이다.  

나는 심사가 좀 꼬인 사람인지, 그렇게 되면 만사가 갑자기 귀찮아져서, 그 어디에도 발길을 들이고 싶지 않은 충동이 갑자기 고개를 쳐든다. 처음의 그 어리숙하고 쭈뼛쭈뼛한 순진성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기점을 지나서부터는 약간 뾰로통한 작자가 되어서 스스로 헛발질을 감행해 버리고 싶어 지는 것이다. 동네의 그 틈바구니를 벗어나 꽤 거리가 먼 곳의 부동산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일는지 모른다. 촘촘한 그물망을 벗어나 운신의 폭을 좀 더 넓게 확보하고 싶었던 것.


#3 우연한 만남

의외로 차선으로 알아본 부동산도 매물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그물망 바깥에 있는 부동산이라 그런지, 뭔가 더 끈질기고 절박한 면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해서는, 어제 본 집들 중에 어느 곳이 마음에 드는지, 새로운 집 한 군데 더 나왔는데 볼 것인지, 그나저나 언제쯤 결심을 할 것인지 등을 자꾸 물어보며 질기게 잡아당겼다. 뭐 집 구하는 데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처지라 그렇게 어물쩡 2주 정도를 보내고 나서는, 이제는 이곳에서 집을 계약해야지 안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이 스멀스멀 자리를 잡았다.  

마침내 그 귀결에 다다랐다. 원하는 집을 구했고, 계약 날짜를 받았고, 드디어 그 부동산 사무실에 당도했다. 중개인은 득의 한 얼굴로 계약 서류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집주인은 이미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가벼운 목례로 우리가 그 신혼부부임을 밝히고, 피차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그때부터는 아주 놀랍게도 정말 시키는 대로 했다. 중간중간 뭐가 뭔지 모르겠는 말들이 오고 갔으나, 일단 자기를 믿고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된다는 식의 중개인의 안내를 홀린 듯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문외한으로 앉아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 대강 전세 계약 이모저모를 사전에 검색해 놓았던 터라 주변머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계약금을 보낼 계좌를 적어서 주는데, 중개인이 갑자기 여기 지금 앉아 있는 집주인은 현재 집주인은 아니고 며칠 내로 바뀔 집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전세로 들어가게 될 집이 현재 매매가 진행 중인 상태라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전세 계약금은 새롭게 주인이 될 분에게 보내면 된다는 건데, 여기서 잠깐. 머릿속을 아찔하게 스쳐 지나가는 전세 보증금 날린 사회면 기사 속 사연들이 ‘위험’ 신호를 날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직 매매 양도가 안 된 상태인데 전세 계약금을 새 주인에게 보내면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 아닌가. 중개인에게 따져 묻듯 이 사실을 뾰족하게 짚었다.

중개인 표정이 일순 차갑게 굳었다. 나를 뭘로 보고 지금 그런 것 하나 어설프게 처리할 것으로 의심을 하냐는 투였다. 이제까지 부리나케 전화통을 붙들고 연락을 취한 노력에 대한 배신쯤으로 생각하였는지 그 빛에 언뜻 모욕감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천천히 매매 계약서 사본을 보여주면서 그럴 일은 전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낮게 깔아 전했다. 그럴 의도까지는 없었는데 내 표정이나 말투에서 의심의 그늘을 직감했는지 더 이상 싹이 더 자라지 않게 단칼에 싹 베어 버리는 것이다. 덩달아 나도 풀이 좀 죽었다.  


#4 합리적 의심

'합리적 의심’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해 볼 수가 없다. 누구나 던질 수 있는 ‘합리적 의심’에 대해서, 하지만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의심'인 이상, 사람을 향할 때는 아무리 이유가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깊이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곱씹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니 ‘합리’와 ‘의심’ 사이의 거리는 되도록 멀면 멀수록 좋겠다. ‘합리’에서 출발해 ‘의심’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과 호흡이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니까 내가 잘 모를 수도 있는 복잡다단한 이해, 정서, 습관, 태도 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부동산 계약은 잘 마쳤다. 역시 빈틈없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 주었다. 신문 지상에 종종 등장하는 전세 계약금 날렸다는 이야기는 어느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코 베일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의심의 싹을 구태여 키울 필요는 없고, 사람을 그렇게 대할 일도 아니다. 이제 나는 겨우 집을 처음으로 얻었을 뿐 아닌가. 앞으로도 이사는 적잖이 할 것이고, 그 외에도 만날 사람, 마주할 일들은 많기도 할 것이다. 의심부터 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만날 수가 없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은 못 키울망정, 벌써부터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는 버릇’만 고집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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