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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르샤 Mar 22. 2020

울 아빠의 칠순 잔치

가족 이벤트

 장녀인 나는 아빠의 칠순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아빠는 일흔 번째 생일을 어떻게 보내는 것을 원할까? 어떤 선물을 받으면 좋아할까? 평소에 "괜찮다.""필요한 게 없다.""너희만 잘 지내면 된다"라고 말씀하셔서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른다. 동생 두 명과 의논한 뒤 몇 년 전부터 필요하신 승용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자녀 3명이서 6년간 1인당 10만 원씩 적금을 들어두었었다. 목돈으로 2000만 원이 되었다. 자동차를 선물하기로 하고 엄마와 아빠에게 말씀드렸다. 모아 둔 돈이 있어서 편하게 선물할 수가 있었다. 행사를 진행할 때 돈도 돈이지만 의견 조율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엄마는 동네에 타고 다니기 편안한 마티즈, 아빠는 할아버지 산소에 다니기 편한 무쏘가 좋다는 의견이다. 무쏘와 마티즈라..... 엄마에게 전한 말이 아빠에게 전달이 잘 안 된다. 부모님을 뵈러 시골에 내려간다는 이야기도 두 분께 따로 전화를 드려야 한다.  삼촌 벌인 친척분 중 현대차 영업사원이 있다. 사위 2명과 아들, 친척분, 부모님과 상의를 했다.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엑센트 경유차로 결정되었다.


 엑센트 차를 구입하는 날,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는 속상하고 힘이 드는 아빠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너희는 내 마음을 너무도 모른다. 차 구입하던 일은 없던 것으로 해라. 때려치워라."며 화를 내셨다. 곧바로 막내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차 구입하는 데 400만 원을 대출해야 해서 아빠에게 캐피털에서 전화가 갔나 봐. 아빠가 대출했다고 화가 많이 나셨어. 지금 계약금 넣고 친척분이 아빠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아빠가 계약 취소하라고 그분에게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으셨어. 나 다시는 아빠한테 선물 안 할 거다."


 돈 관리하는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400만 원이 있는데 혹시라도 아빠가 병원 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남겨둔 건데, 대출해서 차를 선물 받는다고 생각하셔서 아빠가 설득이 안된다. 나는 아빠 보러 이제 집에 안 갈 거다." 총 2000만 원이 있는데 급하게 사용하게 될 일이 있을까 봐 500만 원은 가지고 있기로 우리끼리 이야기가 되었다. 이 일을 모르는 아빠에게 대출 전화가 갔으니 화를 낼 만도 하시다. 동생들이 나에게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상황을 차근차근 이야기를 했다.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과 대출이지만 그만큼의 여유돈이 있고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붙였다. 긴 시간의 통화 끝에 아버지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해라"라는 답변을 들은 다음에야 이 일은 성사시킬 수 있었다. 엄마는 엑센트 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식들이 생각이 나 뿌듯하다고 하셨다.


 이 일을 겪으며 가정 내에서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 마음은 있으나 그것을 표현하지 못해 대화가 중간에 끊어지는 일이 허다했다. "아버지! 자식 셋이서 선물을 하고 싶어서 의논하고 준비했는데, 때려치우라고 하니 슬펐어요."라고 칠순 잔치가 끝난 다음 나도 속상했던 마음을 넌지시 표현해보았다.


 생일과 가까운 설날, 삼촌 내외분을 모시고 횟집에서 식사를 계획했다. 나의  할아버지 환갑 때는 가족이 한복을 깔맞춤 하고 판소리 하는 분이 왔었다. 집에는 동네 분들이 음식을 드셨고 엄마의 계모임 지인들이 주방을 담당하셨다.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는  찬합 도시락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답례품에는 축 회갑 송점수가 찍혀있었다. 이런 기억이 있어서 인지 어른들이 그냥 밥만 먹고 칠순을 보내는 것 만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4남 1녀 중 아버지가 장남이다. 어른들께 전화를 드렸다.


 마산 작은 아버지는 며칠 전에 고성 우리 집에서 부모님과 마음 상한 일이 있었나 보다. 아빠 칠순으로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는 나의 전화에 "너한테 이런 소리 하는 건 미안한데, 귀옥아! 못 가겠다.""제사를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다. 못 가는 걸로 알아라" 앞으로 제사를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이다. 서운한 일이 있었던 그때에 내가 마침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네"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완전체가 아닌것이 서운했을까? 아버지 칠순을 나만큼 기뻐해주실거라는 기대가 꺾여서 였을까? 울먹  울먹


 서울 작은 아버지께 전화해서 칠순 식사 이야기를 하려는 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목이 멘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물음에 섭섭했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아무 말 못 하고 꺼억꺼억 울고 있으니 전화기 너머서 달래어 주신다. 눈물이 진정된 후에야 계획을 말씀드렸다. 바로 감정을 이야기하고 뒤끝은 없는 분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말아라고 하신다.


 엄마 환갑 때 케이크로 초를 불었더니 매년 하는 생일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는 아빠 생신 때 상차림 대여했으면 좋겠어. 준비를 부탁했다. "누나야, 나는 그거 하는 거 파이다.(파이다는 '나는 싫다'라는 경상도 사투리) 희영이가 상차림 준비가 싫단다. 상차림을 하고 싶은 큰 마음은 내 것이니 동생이 싫다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싫을 수도 있겠다. 희영이가 싫어하는 이유를 누나는 알고 싶어" "우리는 모두 함께 식사를 하는데 아빠는 그곳에서 덩그러니 혼자서 밥 먹고 그러면 제사상 같은 기분이 들어." "아~~ 그랬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싫었던 거구나. 아빠 혼자 있으면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엄마랑 아빠랑 같이 앉아서 행사만 진행하고, 식사는 우리랑 같은 테이블에서 드시는 건 어때?" 그랬더니 동생이 "아~~~ 그러면 괜찮겠네" 그리하여 동생과 올케가 상차림을 멋있게 준비해 주었다. 칠순 준비하는 동안 가족의 의견을 묻고 조율하는 상황이 여러 번 생겼고 그랬기에 소통의 기회가 마련되었다.


 칠순 행사는 설날 뒷 날에 횟집에서 1차 모임과 펜션에서 2차 모임을 했다. 아빠가 자리에 앉기 전에 상차림과 고희 글씨를 한참을 보며 서 계셨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였냐?"며 흐뭇해하셨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아빠에 대한 퀴즈를 내었다. 퀴즈를 맞출 때 구호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막내 숙모가 아빠의 존함 세 글자를 외치자고 제안을 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불러 보냐고. 아빠의 너틀 웃음으로 허락을 받고 이벤트를 시작했다 사위도, 며느리도 손을 들고 아빠의 이름 석자 "송인식"을 외쳤다. 아빠에 관한 질문들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빠의 혈액형, 발싸이즈, 아빠와 엄마의 나이 합. "00님. 사랑합니다." 문자보내기를 했다. 서울에서 오신 삼촌 내외께는 장거리 상으로 주유 폰을 드리고 커피 답례품도 준비했다.



  마지막 선물은 아빠의 어린 시절부터 사진들을 모아서 영상을 만들어 보여드렸다. 바닷가에서 수영복 입은 장난끼 가득한 10대의 아버지, 군복 입은 늠름한 아빠, 신혼여행의 엄마와 아빠,  토목업으로 저수지를 공사하던 아빠, 어느새 할아버지가 된 아빠의 모습이 영상으로 흘러갔다. 아빠는 "한 평생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다. 이게 내 인생이었구나." 하며 좋아하셨다. 집에 있는 tv에 저장해 드렸더니 생각나실 때마다 보신다.


 가족의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의 불편함 이상으로 감동이 밀려왔다. 가족이 함께 하는 행복한 추억을 남겨서 뿌듯했다. 준비하는 시간들은 보람된 시간으로 느껴졌다. 마음의 불편한 감정들도 아빠의 잔치를 준비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불편한 감정들을 서로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함께 하지 않은 서운함도 들었지만 오히려 함께 참여해 주시는 분에 대한 감사함이 두배 세배 백배가 되었다. 아프고, 슬프고, 가슴 철렁한 준비 과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하길 잘했다. 행사가 끝난 후 "참~~~ 좋다."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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