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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르샤 Jul 06. 2020

엄마 칠순 잔치를 코로나 시국에 어찌한단 말이오~

가족의 이벤트




  7월 8일 엄마의 70번째 생일날이다. 생일 전 주  토요일에 딸 둘과 남편과 함께 버스를  탔다. 서울에서 경남 고성으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핸드폰 진동이 온다. 발신자는 엄마이다. 크게 숨을 들여마셨다가 내뱉은 후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엄마가 "어디고?" 다짜고짜 물었다. 나는 "버스 안이다" 엄마는 "어디 가는데?"  나는 "집(친정)에 가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하며  한숨소리를 내셨자. 세상 꺼져가는 소리다. '딸이 집에 간다는데 이런 한숨 소리를 들어야 하나?'하며 나는 엄마의 표현에 기분이 상한다.


  마음이 많이 무겁다. 엄마가 싫다는데도 나는 친정으로 가고 있다. 엄마와 통화 마지막 말은 "알겠다." 그 알겠다 목소리가  아래로 아래로 처지며 귓가에 맴돈다. 칠순 축하하는 날이라 기쁘게 내려가고 싶었건만 우리의 만남은 한숨섞인  만남이다.


  사실 2주 동안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엄마도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칠순에 무조건 친정으로 오지 라는 엄마가 좀 야속했다. 우리를 생각하는 줄 알기에 칠순을 다음에 할까? 했다가 코로나가 진정 모드로 들어가면 모르겠는데, 앞날이 더 어수선하지 않은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지금 할 테다. "라고 강하게 마음 먹고 내려갔다.



  큰 딸이 사회를 맡았다. 나는 첫째다.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후에 오늘의 주인공 배영숙 여사님의 칠순 공식행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잠시 행사장으로 모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라고 말했다. 엄마가 곱게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으며 행사 맞이 준비를 하신다. "지금부터 오늘의 주인공 배영숙 여사님의 고희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주인공 입장!" 하고 외쳤다.


  엄마와 아빠가 거실에서 손을 마주 잡고 큰 방으로 들어 오셨다.  "저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와 사랑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울컥함이 올라왔다. 다행히 마음이 바로 잔잔해졌다.  


  2주일 전부터 우리 가족은 엄마의 칠순을 준비했다. 음식은 무엇을 할지, 잡채, 미역국은 꼭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둘째가 사 온 낚지, 가지전, 불고기 등으로 집에서 한상 차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식구들이 이 시국에 식당에 가는 것보다는 집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용돈은 셋이 합해서 100만 원을 봉투에 넣어드렸다. 아빠의 칠순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한 것이 죄송했다. 그러나 무리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성의가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상차림 하는 곳에서 칠순 현수막과 상차림 세트를 대여했다. 케이크도 이쁜 앙금 케이크와 이쁜 토퍼도 주문했다. 빳빳한 현금 100만원을 엄마가 머니건을 쏘는 이벤트를 생각하니 신났었다.


  손주 서별과 서현이는 재래시장에 가서 할머니의 칠순 선물을 준비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불교 상품 가게에서 옥 색깔의 목걸이를 샀다. 할머니 취향 저격이다.  


  막내네는 축하 공연으로 밴드를 준비했다. 8살 예진이는 우쿨렐레, 11살 경원이는 카혼, 12살 예빈이는 키보드. 올케는 기타, 남동생은 가수이다. 동요인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를 "할머니 생신 축하해요"로 개사하여 밴드로 연주를 했다


  "내 사랑 할머니 생일을 축하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우리들 모여서 함께 노래 불러요.

할머니 생신 축하노래를

우리들 모여서 함께 노래 불러요.

할머니 생신 축하노래를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생신 축하합니다."


  밴드의 음악이 너무 좋아서 우리는 앵콜을 외쳤고, 다시 한번 들을 수 있었다. 서로의 얼굴에 미소가 퍼지고 가슴은 포근하게 감싸 안아졌다.


  마지막 우리 가족 차례가 돌아왔다. '내 나이가 어때서' 트로트 노래를 '칠순 축하합니다'로 개사하고 율동을 선보였다. 44살의 딸과 사위의 재롱에 엄마가 좋아하셨다.  코로나 때문에 오지 못하게 한 마음도 가사에 녹여내었다.




"이 야이야~ 칠순 축하드려요.

칠순에 사랑을 쏩니다.

마음은 하나요. 가족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가족인데

우리가 왔어요. 서울에서 왔어요.

칠순 하기 딱 좋은 날인데.

어느 날 우연히 달력 속을 보다가 오잉!

칠순 일이 다가오네요

코로나 비껴라. 칠순 하러 갈란다.

칠순 하기 딱 좋은 날인데

야이 야이야 건강해요. 아프지 마요

야이 야이야 행복해요 오래 사세요.

야이 야이야 칠순 축하드려요.

칠순에 사랑을 쏩니다.

마음은 하나요. 가족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가족인데

우리가 왔어요. 서울에서 왔어요.

칠순 하기 딱 좋은 날인데.

어느 날 우연히 달력 속을 보다가

칠순 일이 다가오네요

코로나 비껴라. money  쏘러 갈란다.

money 쏘기  딱 좋은 날인데"




  마지막  중요한 하이라이트다. 가짜돈이 든 머니건을 내가 쏘았다. 머니 쏘러 갈란다 노래를 부르며 엄마에게 총을 건내주었다. 처음에는 가짜 돈이 나왔었는데, 빳빳한 진짜 10000원이 나오니 모두 소리를 질렀다. 돈벼락을 맞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모습에 준비한 우리가 신이 났다. 이런 이벤트를 부끄러워하는 동생이 보더니 "오글 그렸지만 재미는 있었다"말을 했다. 그 정도면 아주 괜찮았다는 반응이다.^^



 엄마에게 마지막 한 말씀을 부탁했다. "코로나여서 아들, 딸들이 안 왔으면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니까 더 좋습니다. " 그 말씀에 엄마가 오지 마라고 했던 서운함이 사라졌다. "그래. 엄마 만나러 오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각자의 축하 방법이 다양했다.  제부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고, 남동생네는 밴드를 구성해서 엄마에게 즐거움을 주었다.(연습중 애들의 장난에 때려 치우라며 약한 화를 낸건 패쓰) 며느리는 엄마가 갖고 싶어 하는 밥솥을 사러 통영까지 함께 다녀왔다. 칠순 상차림도 고급스러운 것으로 선택해서 아빠와 엄마가 마음에 쏙 들어하셨다. 둘째는 총무로 돈을 관리하고, 칠순 한다는 이야기와 올케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건네주고 전체를 총괄해주었다. 첫째 사위는 큰 율동으로 기쁨을 드리고 따로 용돈도 더 챙겨 드렸다.  여러마음이 합체 되어 기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마음이 참 좋았다.


  엄마 칠순잔치 참 잘하고 돌아왔다. 즐겁고 재미나고 마음 따뜻한 시간이었다. 함께 있음에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엄마!  나 내려가길 잘했지??

다음에는 머니건에 돈 더 넣어줄게.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요.

키워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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