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소아과의 힘
10년의 시간, 변하지 않은 병원
10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다닌 동네 소아과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얼굴.
선생님께서 반갑게 웃으며 물으셨어요.
"큰아이 고등학교 졸업했죠. 전공은?”
“언어치료입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습니다.
“잘 참고 인내심이 좋은 아이예요. 잘 선택했네요.”
아이를 어릴 때부터 봐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그 한마디에 지난 시간이 오롯이 떠올랐습니다.
ㅡㅡㅡ
그날도 일하고 있었습니다.
바쁜 시간,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너무 아파.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당장 달려갈 수 없었습니다.
아이 손에는 돈도, 카드도 없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야 하나 머릿속이 하얘졌고
익숙한 병원,
10년 넘게 다닌 동네 소아과가 떠올랐습니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선생님, 아이가 지금 아픈데
제가 결제는 조금 늦게 가도 괜찮을까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러세요. 얼른 보내세요.”
선생님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했습니다.
그 순간, 알았습니다.
아이는 혼자 자란 게 아니었다는 걸.
저 혼자 키운 게 아니었다는 걸.
ㅡㅡㅡㅡ
아이 곁에는 늘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켜준 어른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무 조건 없이
믿어주고 기다려준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의 몸이 회복되는 것만큼
제 마음도 깊이 치유되었습니다.
ㅡㅡㅡ
스스로 병원을 찾는 아이, 그 성장이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여기로 달려왔습니다.
선생님이 그 자리에 계셔주셨기에
두려움보다는 안심이 컸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갑니다.
그 변화가 얼마나 고맙고 벅찬지요.
보통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사람에게
그래서 조심스럽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웃으시며 말했습니다.
“요즘 그런 인사를 자주 들어요.”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일을 오래도록 꾸준히 해내는 것—
그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한마디의 인사를 건넵니다
문득 떠오른 이야기 하나.
문형배 판사님이 김장하 선생님께
장학금 받았던 고마움을 전하며 말했습니다.
“큰 인물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때 김장하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셨다고 하지요.
“보통의 국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십니까.”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보통의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 자리에 늘 있어준 감사한 누군가가 떠오르시나요?
그럼 말해 주세요.
“그 자리에 있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