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이후의 공백.

호주로 넘어와 드디어 영주권을 손에 쥔 후 찾아온 허무주의적 나날들

by 강나르샤

시큰둥하게 공원 의자에 앉아서 비둘기들에게 바게트빵을 떼어주고 있는 샌드맨에게 그의 누나인 죽음이 다가간다.

I don’t know what’s wrong, but you’re right.
Something is the matter.
When they captured me, I just had one thought.
Vengence.
It wasn’t as satisfying as I’d expected.
Meanwhile, my kingdom had fallen apart.
My tools long since stolen and scattered.
And so I embarked upon a journey to find them.
Which I did.
I’m now more powerful than I have been in eons.
And yet…
You see, until then, I’d had a true quest.
A purpose beyond my function and then suddenly, it was over, and…
I felt disappointed.
Let down.
Empty.
Does that make sense?
I was so sure that once I got everything back, I’d feel good.
But in some ways I feel worse than when I started.
I feel like…
Nothing.

[샌드맨 S1 E6. The Sound of Her Wings] 중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 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떠올리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거의 2년 가까이 이 상태로 지내왔다는 사실이다.

시작은 어쩌면 행정적인 절차였을지도 모른다.


이민성에 EOI를 제출한 이후, 도시를 옮기고, 일의 형태가 바뀌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게 되면서. 혹은 마침내 영주권을 신청하라는 연락을 받고, 몇 달 뒤 자동 생성된 이메일로 그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삶의 여력과 원동력, 그리고 의미 같은 것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비교적 분명하다.

카라반 회사에 지원했다가 가구를 조립하고 설치하는 본작업에서 바로 밀려났었다. 그냥 봤을 때 체격이 외소한 여자라서 사내 회의를 거쳐 막상 출근했을 때는 문만 하루 종일 다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 틈에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과 눈이 맞아 신중하지 못하게 그의 집으로 이사를 들어갔고, 그 무렵부터 나는 이전과 다른 속도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호주에 막 도착했을 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바라보면, 그 에너지가 낯설 정도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정한 숙소가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날, 시내 여성만 받는 숙소로 급하게 찾아가 그날 저녁 바로 옮겨갔다. 이미 낸 돈을 돌려받기 위해 집주인을 찾아가 설득했고,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움직였다. 그 시절의 나는 이상할 정도로 끈질겼다.

시간과 차비를 아끼기 위해 목공학교 근처로 옮겨 급히 식당 일을 구했을 때는, 식당 뒷편에 버려진 자전거를 고쳐 통학과 출퇴근에 썼다. 거미줄을 떼어내고 헬멧을 씻어 말리고, 라이트를 달았다. 해가 떠 있을 때 언덕을 오르고, 어두워진 뒤 다시 그 언덕을 내려왔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늘 몸의 감각으로 기억되던 시기였다.


어떻게든 나무를 만지는 일을 하고 싶었다.
바닥을 갈고 오일을 먹이는 작업을 하며 하루 종일 기마자세로 진동을 견뎠고,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은 채 시간을 보냈다. 이후 바닥 설치 일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있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학교를 자주 빠져가면서 일해 목돈을 벌고, 첫차를 샀다.


가구를 만드는 작은 회사로 옮겼을 때는 잠시 균형을 찾았다. 주 4일 근무로 전환하며 삶이 조금 넓어지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반복 작업으로 몸이 먼저 무너졌다. 망가진 관절은 이후 디자인 일을 시작했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그 무렵부터 나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기 시작했고, 공동 워크숍을 빌려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숙소 렌트에 얹어 워크숍렌트까지 감당하는현실이었고, 결국 근처 카라반 공장에서 주 5일 근무를 선택해야 했다.


이상하게도 그때까지는 허무하지 않았다. 공장으로 찾아갔을 때 그 당차고 또렷한 자의식을 기억한다.
그때까지는 영주권이라는 목표가 분명했다. 직업 선택지는 어차피 그 경로에 제한되어 있었고, 하루하루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나는 ‘영주권을 따고 나면 공허해진다’는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그저 더 열심히 일하면, 결국 좋은 작업 환경에서 계속 나무를 만지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그 믿음이 환상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디자인 원목가구 스튜디오들은 사람을 적게 뽑아 자리가 잘 나지 않았고, 나머지 공장들은 하루종일 플라스틱 가루가 날아다녔다. 개인사업을 시도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자원이 소모되었고, 프로젝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멈춰 섰다. 시간도, 돈도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해왔으니 앞으로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 것은 내 생각과 상황보다 거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렴풋이 지레짐작한 꿈이 조각나는 일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조용히 실망했다.


그때부터 길은 흐릿해졌다.
영주권을 손에 쥔 날, 생각보다 마음은 조용했다. 무언가를 얻었다기보다, 오래 붙들고 있던 이유 하나가 사라진 느낌에 가까웠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 사회가 나에게 기대했을 어떤 모습이 결국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과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머리는 알고 있고 몸은 지쳤지만, 기분은 지난 세월을 억울해한다.


동아시아에서 온 여리여리한 여성으로서, 영어는 유창하지만 완전히 중심에 속하지는 않는 위치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지역 사회 안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 그 조건을 하나씩 대입하다 보면, 지금까지의 시간과 자아를 또다시 통째로 재정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내 존재가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 속에서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세포, 혹은 톱니바퀴의 부품에 가깝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엄마 곁을 떠나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요즘의 나는 생각만 해야할 일들을 기웃거린다.
형편에 맞지 않게 돈이 되지 않기로 유명한 그림을 그리고, 소품을 만들고, 몇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델 프로필을 준비해볼까 고민하고, 이렇게 미뤄두기만 했던 글을 쓰기도 한다. 마치 시식 코너를 한 바퀴 도는 사람처럼, 깊이 들어가지 않은 채 가능성만 훑는다. 이뤄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만져나 보자, 하면서 스윽 쓰다듬어본다.


그러는 동안 통장 잔고는 서서히 줄어들고, 나는 은행앱 화면을 들여다본다. 계속 보고 있으면 무언가 달라질 것처럼.


그래서 가끔은 묻게 된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 그리고 지금 붙잡고 있는 것들은 정말로 나에게 유효하지 않은 것들일까.
아니면 내가 그냥 너무 지쳐 있는 걸까.

변명거리는 많지만, 누군가는 해낸 것들을 나는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그게 나인지, 사회적인 것인지, 물리적인 것인지,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만이 분명한 것 같고, 나머지는 다 잡을 수 없는 연기다.

내가 그냥 태어나기를 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내 조건에서 하기 적절한 어떤 종목을 우연찮게 가장 즐기는 그런 사람으로 났더라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잔고가 여기서 더 줄어들 한 두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이 더 생기면, 나는 다시 해가 떠있는 동안 참아야 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그렇게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행위를 매일 반복하는 것을 다시 해야할 것이다.

막상 먹었을 때 그리 맛이 없어도 좋으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당근 하나만 그 전에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달아놓고 쫒아가면서 그 시간들을 버틸, 운이 좋으면 그 시간을 느끼지도 않을 그런 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