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자식과 완충제 사이

by 강나르샤

*이 글은 가정학대 관련 글입니다. 이 주제에 민감한 독자분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글임을 미리 당부드립니다.


No, actually, I don't think you understand.
I think you think I'm saying something different than I am.
Like, yes, I've done certain things.
And so, you know, you're gonna say I'm one way, and you are gonna tell everyone I'm one way, but I'm not.
Okay? I don't know what I am.
I can't tell what I am, and I never will be able to tell is what I'm saying.

Monsters, The Lyle and Eric Menendez StoryE5 'The Hurt Man'




부모를 무참히 살해한 두 형제의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리즈가 넷플릭스 메인화면에서 내 시선을 잡아서 결국 시청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범죄자를 바탕으로 한 시리즈나 영화는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미화하는 면이고 그 자극성으로 돈을 버는 제작자와 그들을 영웅화해서 결국 본인들이 살인마가 된 몇 명의 유명한 연쇄살인마들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The Monster, Ed Gein Story에서 잘 풀어낸 것 같다. (그렇다. 결국 이걸 보고 여운이 남아 오리지널 살인마들: Ed Gein, Jeffrey Dahmer도 파고들게 되었다. 물론 미화하지 않은 콘텐츠만)


내가 이 시리즈에 유독 끌려든 것은, 나도 어릴 적 소원이 아버지가 없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청을 하면서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나는 정말이지 첫째 Lyle 캐릭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외모나 몸매, 연기력이 아니었다. 그 캐릭터가 하는 소소한 행동과 몸짓, 말투, 갑자기 거세져서 주변을 억누르는 예측할 수 없는 기운, 아주 사소한 것에도 버럭 화를 낸다거나, 좀처럼 차분하게 있지를 못하고 항상 곤두서있고, 하지 않아도 될 헛소리를 한다거나 과장된 이야기를 하고, 외모나 치장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하관과, 동생에 비해 다소 키는 작지만 커다란 풍채까지 닮아 있어, 미국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이었지만 정말 소름이 돋았다.

그 장면들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에 가정폭력 하에서 자라난 형제, 자매 간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면? 예를 들어서, 가정폭력 하에 자라난 첫째 아들들은 주로 어떤 특성을 보이는가.


엄마와 작은 오빠, 그리고 나 셋다 공감하는 몇 안 되는 것들이 있다면, 큰오빠의 성격은 어린 시절 가장 극심하던 시기에 노출된 지속적인 가정폭력 탓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큰오빠가 결국 아들을 하나 두고 안타깝게 이혼을 하는 과정과 함께 40대에 접어들어 좀 누그러졌다고 하지만, 나와 작은 오빠가 보았을 때 그 뼈대는 그대로 거기에 남아있다.

나는 이 뼈대가 어떻게 그렇게 생겨날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큰오빠의 타고난 성격이고 어디까지가 가정폭력 피해자의 성격인지 늘 궁금했지만 여태까지 지레짐작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서구권의 여러 학대가정 연구결과에 의하면, 가정 학대에는 역할군이 있다고 한다. 주로 4가지로 나뉘고 이는 경우에 따라 중첩될 수 있는데, 내가 자란 환경에 바로 이입해보면, 엄마는 희생양 scapegoat, 큰오빠는 장자로서 양념자식 golden child에 완충제 buffer, 작은 오빠는 주로 목격자 witness 이면서 완충제, 그리고 나는 막내딸로서 양념자식과 목격자가 중첩된 형태였다.




엄마는 결혼하자마자 큰오빠를 임신했다고 한다. 나와 열 살이 차이나는 큰오빠. 오빠는 10년을 먼저 태어나서 이 일을 가장 처음으로 겪어냈다. 아버지가 더 젊고 더 술을 왕성히 마시던 시절에, 엄마 곁에는 아직 손 크기조차 어른 손바닥만큼도 안 됐을 큰오빠만 있었다.

어릴 적에는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이 집안에 일어나는 전부였던 것처럼 보였다. 그 땐 그냥 거의 매일 겪는 그 공포에 정신이 팔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땠을지 짐작할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어느 정도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 즈음이었는지, 고등학생 즈음이었는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이따금씩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털어놓곤 하셨다.


"그때는 군부대 옆에 조그맣게 슈퍼 겸 민박을 차려놓고 휴가 나온 군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지. 묵을 수 있는 방을 한 7개 정도 마련해 놓았었어. 너희 오빠가 지금은 저렇게 크고, 힘도 세져서 아빠가 심하게 굴면 막아설 수 있지. 작은오빠도 있고. 오빠가 조그만 아이였을 때는 그렇게 엄마랑, 힘없는 오빠 둘 뿐이었어. 아빠가 그렇게 장사한다고 차려놓은 가게에서 친구들이랑 술을 거하게 마시고 그 사람들이 집에 가고 나면, 지금보다 더 자주 예민해지곤 했단다. 엄마가 예감이 안 좋아져서 숙소 방들 중에 한 곳에 오빠를 품고 조용히 숨어있으면, 아빠는 엄마를 찾아내겠다고 방 문을 하나씩 차서 부수곤 했지. 아빠가 가까워지면 그다음 방으로 숨고... 숙소 방들 중에 잠기는 문이 없었어. 다 부서져서."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즘 될 때까지만 해도 오빠들은 집에서 지냈다. 적어도 작은 오빠는 집에 있고 큰오빠는 주말에 왔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안심이 되었던 게, 아빠가 행패를 부리면 오빠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가족끼리 아침을 먹고 아빠가 11시 즈음 친구가 부른답시고 차를 끌고 나가면 중천에 있던 해가 앞산 너머로 뉘엿뉘엿 해질수록 가족 넷이서 눈치껏 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사냥용 총을 찾아내서 숨긴다던가, 위험할 수 있는 물건을 치워놓는다던가.


어떤 날은 대충 어느 정도 잘 넘어갔던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큰오빠가 아버지를 끌고 나가 휘발유통을 찾아다가 같이 타 죽자면서 서로 윽박지르는 걸 현관 문턱에서 지켜본 기억도 있다. 어느 날은 거실에서 오빠들이 아버지를 말리다가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소파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큰오빠는 꼭 부여잡고 있었다. 다시 튀어올라 엄마에게 달려들까 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한 행동이 그만큼 충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주먹질에 놀라지 않았었다. 오히려 오빠가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첫째 아들로서 도리를 다 해야 한다고 배우고 자란 도덕심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끊임없이 충돌하던 그때, 큰오빠는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큰오빠가 유독 보여지는 것에 관심을 보인다는 걸 인지한 시점은 그때인 것 같다. 일종의 '일진' 무리와 어울린다거나, 담배도 피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집에 오면 나도 찾을 수 있는 어설픈 위치에 숨겨놓곤 했다. 집에 오면 자신이 여자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끊임없이 자랑을 늘어놓곤 하고, 내가 고등학생쯤 되어서 대충 알 것을 다 알만한 나이에 들어섰을 때는, 굳이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성적인 경험에 대해 다소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등의 허세와 치장, 외제차, 몸매관리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직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나조차도 가족 간 위계질서 때문에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그때 즈음 부터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큰오빠가 사춘기가 지났는데도 자꾸 안 해도 될 헛소리를 하네. 설마 원래 성격인 건가. 내가 아는 그 트라우마와 지금 이 산만함과 허세는 연관성이 있나.


내가 어렸을 때는 큰오빠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나도 가끔 부모님 농사에 일손을 거들곤 했지만, 이따금씩 어머니가 나는 집에서 쉬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느 날은 그렇게 집에 있는데 농사일을 마치고 들어온 큰오빠가 현관에 신발들이 정리가 안 돼있다고 나한테 매질을 했었다. 오빠는 언제 무슨 일로 화를 낼지 예측할 수가 없고,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어서 주변 사람을 늘 불안하게 만들었다. 집안에 나와서 돌아다니는 물건이 없이 다 장 안에 보관되어있어야 했고, 뭐든 제자리에 가지런해야 했고, 뭐든 관리가 안되고 대충 쌓아놓는 꼴을 못 보는 강박장애가 있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면 바로 분위기가 서늘해져서 그 누구나 자동으로 그에게 맞추는 꼴이 되는, 정말 기가 센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화를 내다가도 돌아서면 화가 풀려있어서 어떤 경우는 살얼음을 오르고 내리는 느낌이었다.

정말 정돈되고, 깨끗하고, 뭘 하면 또 짐승처럼 해대서 곧잘 성공할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주 산만해서 즐기는 게임이나 운동이 아니고서는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과, 특히 문서를 집중해서 보고 파악하는 것을 잘 못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런저런 것들을 곧잘 따라잡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반찬을 꼬박꼬박 받아서 버리는 것 없이 먹으면서 검소하게 사는데도, 충동적으로 종종 돈을 쓸 때는 고래처럼 써대고, 일단 통장을 소상히 들여다보는 성격이 못되어 돈이 잘 모이지 않는 패턴을 보이곤 했다.




여러 연구결과*들을 조합해 정리한 이론에 의하면, 학대 가정에서 첫째 아들이 양념자식 golden child에 완충제 buffer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보이는 형태라고 한다. 큰오빠의 경우에 이입을 해보면, 양념자식으로서 부모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잠재된 압박감과 피해자인 엄마와 다른 가족들을 가해자인 아버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상황을 살피고, 위협을 본인이 흡수해야 한다는 전혀 다른 의미의 두 압박이 학대가 지속된 시간만큼 서로 끊임없이 충돌했다. 이로 인해 신경계 전달 회로가 기억나지 않는 순간부터 상시 긴장상태에 있었고, 이는 그대로 고착되어 영원히 전시상태로 남았다.


"오빠가 네 살 즈음이었지. 지금은 오빠들이 둘이지만 사실 오빠가 한 명 더 있었지. 대충 이 전에 얘기해 줬지만. 네가 그 오빠를 꼭 닮았단다. 큰오빠가 두 살일 즈음에 태어나서 그 오빠가 두 살 즈음이 되었을 때인데, 그때 원래는 셋째였고 지금은 둘째 오빠인 너 작은오빠를 또 임신한 상태였어. 너희 아버지는 그날도 어딘가에서 술을 잡수시고, 엄마는 돼지밥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밥을 주려고 하고 있었지. 엄마가 잠깐 볼일을 볼 테니 동생과 둘이 잠깐 있으라고 당부를 하고서 돼지 밥을 주고 왔더니, 큰오빠만 있는 거야. 그래서 네 동생 어디 갔냐고 물어봤더니, 어떤 삼촌이 데리고 갔대."


엄마는 그날 동네 어느 방죽에 떠 있는 아이를 건져서 병원에 데려가고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별로 특별하지 않은 주민의 이미 죽은 아이를 위해 어떻게 해보려는 움직임은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즉각적으로 그 소식과 함께, 자식잡아먹은 여자라 탓하며 집에 불을 지르고, 엄마는 아이를 죽인 범인을 찾을 겨를도 없이, 그놈의 불부터 먼저 꺼야 했다.


"그치, 그때 즘이었어. 그날 저녁은 달이 언덕 너머로 환하게 비치는 날이었는데, 네 살 먹은 너희 오빠가 엄마 손을 붙잡고, 집에서 나가자고, 그렇게 나와서는, 달빛에 의존해서 그 거친 풀숲을 씩씩하게 헤치면서 산등성이를, 엄마 손을 붙잡고 앞장서서 넘어갔단다."


오빠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절대 묻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릴 때 기억이다. 죽은 오빠가 없어지고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 혹시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을까, 선하게 다가오는 어르신을 믿었던 4살 아이의 판단력을 탓했을까.




오빠는 20 중반쯤 들어설 즈음부터 바디빌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이혼한 이후로는 바디빌딩과 재혼했다 싶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그 늦은 나이에 시작했는데도 여기저기 대회를 다니며 나름 상금도 쏠쏠하게 타고, 제2의 직업이 되었다. 그러나 대회준비 때문에 이따금씩 수분조절을 할 때마다 급격히 주름이 생겼다 물을 마시면 다시 팽팽해지는 외모적 변화라던지, 이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종종 시기가 겹쳐 등에 생기는 피부병 때문에 엄마는 끊임없이 속상해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큰오빠와 엄마는 다투기 일쑤였다.


오늘 저녁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큰오빠 이야기를 했다.

"엄마, 오빠 몸 만드는 거 그거 해로워 보여도, 그냥 하게 내버려 두세요. 그것조차 안 하면, 큰오빠 진짜 큰일 날지도 몰라요. 적당히 해라 그런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아빠는 여든을 바라보기 시작한 이후로 점점 술버릇도 누그러지시고, 심지어 최근에는 엄마가 다니는 성당을 따라나서기 시작하셨다. 모든 가족들이 기분 좋은 충격을 받고 아직도 아버지가 찬송가를 따라부르는 이야기가 오가면 자지러지게 웃어댄다. 아버지는 멋쩍어하면서도 전화너머로 '내가 다니면 너도 다닌다고 했으니까 너도 거기서 성당 다녀라' 하면서 내기에 이긴 사람처럼 기쁜 기색을 보이신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아버지를 용서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메넨데즈 형제의 주장이 허구인지도,

난 잘 모르겠다.




*Murray Bowen (보웬 이론), Salvador Minuchin (구조적 가족치료), 자주 인용되는 임상 저자로는 Claudia Black, Sharon Wegscheider-Cruse, Alice Miller (특히 『The Drama of the Gifted Child』)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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