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었다. 30대를 돌이켜보면 힘들었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취업 때문에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 제주 등 타향에 살면서 31살에 첫애를 낳고 35살에 둘째를 낳았다. 30대의 나는 회사에서는 신입 태를 벗고 한창 일해야 하는 중견 직원으로, 집에서는 양가 어른들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 정신없이 바빴다. 회사일과 집안일로 하루를 채우다 보니 언젠가부터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회사 일에 매달리기도 했었다. 집에서보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게 그래도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마음에 여유도 없거니와 몸이 너무 고달팠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출근하면 ‘육아’라는 육체노동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재우다 보면 같이 잠들기 일쑤. 다음 날 아침에 눈 뜨면 아무런 여유시간을 갖지 못해 억울한 마음만 가득 차올랐다. 피곤하고 억울하니 남편과 자주 다투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다른 길을 알지 못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겠거니 생각했다.
출산 이후 제일 휴직을 많이 한다는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이 눈앞에 닥쳐 어떻게 해야 고민을 하던 때였다. 다음 발령 때는 본부에 진입해야 승진할 것 같아서 계속 일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던 무렵, 내게 암이 찾아왔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병 앞에서 나는 순순히 승진 욕심을 내려놓았다. 아이들도 어리고, 살면서 못해 본 것도 많고, 가진 건 몸뚱이뿐인데 건강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휴직을 하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한낱 연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체감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휴직기간 동안 무엇을 할까 찾아보다 제주 아이쿱 생협을 통해 한 달에 한 번 미리 선정한 책을 읽고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때는 독서가 취미였으나 독서가 희망사항이 되어버린 시기에 만난 이 독서 모임은 비록 조그만 불씨에 불과했지만 메말라있던 내 마음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정규 멤버 단 3명으로 시작한 독서 모임은 각자의 이유로 독서 모임이 절실했던 세 사람이 모인 덕에 한 번도 거르는 일이 없이 100% 참석으로 꾸준히 유지되었고, 회사에 복직한 후에도 모임을 계속 이어나갔다.
책 읽기에 한창 재미를 들인 무렵 모임에서 정유정 작가님의 책 <28>을 읽게 되었다. 흡인력 있고 박진감 넘치는 작가님 특유의 문체에 반해 혼자 다른 책을 더 찾아 읽게 되었는데, 그때 읽게 된 책이 <히말라야 환상 방황>(은행나무, 2014)이다. 작가님이 글을 써야 하는데 딱히 이유도 없이 에너지가 소진되어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자, 히말라야를 다녀오면 방법을 찾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네팔에 가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쓴 에세이집이다. 집 이외에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님의 생애 첫 해외여행이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니 게임 첫판부터 끝판왕이 된 것처럼 뭔가 멋지다고 느껴졌다. 막연히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여정이 힘들고 고산병의 위험도 있는 것 같았지만 책을 읽을수록 히말라야는 어떤 곳일까 궁금하고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나도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심장이 계속 두근거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다 그냥 이부자리를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그곳. 가자! 히말라야로, 안나푸르나 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