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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10. 2020

엄마는 타임푸어

휴직 102일째, 민성이 D+351

'수동적인 삶은 거부한다. 내 밥은 내가 먹겠어!' / 2020.08.08. 군산 장어골


지난주엔 서울에 사는 동생이 군산에 내려와 사나흘 머물렀다. 주말엔 그의 여자 친구도 합류해, 모처럼 우리 부부와 동생 커플 넷이 한자리에 모여 환담을 나눴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근황을 말하다 아내는 군산에서 자신이 '타임푸어(Time Poor)'가 됐다고 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복직 후 가장이 되어 일도 하고, 부양육자로서 애도 보는 그녀는 타임푸어가 맞다.


공기업에 다니는 아내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9시부터 6시까지 일한다. 아내는 - 물론 나도 - 민성이가 잠에서 깨는 6시 반쯤 일어난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8시 반까지,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정도다.


민성이 첫 이유식은 내가 먹일 때도, 아내가 먹일 때도 있는데, 평일엔 주로 그녀가 먹인다. 밥을 먹이고도 시간이 남으면, 그녀는 민성이와 놀아준다. 그녀가 나간 뒤 종일 아이와 있어야 하는 남편을 위한 배려라고, 난 생각한다. 


아내가 민성이와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전날 저녁에 써놓은 브런치 초고를 퇴고한다. 그때가 아니면, 아이를 돌보며 매일매일 브런치를 쓰기 어렵다. 그것 역시, 아내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저녁 6시 반쯤 돌아온다. 민성이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그녀는 곧바로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는다. 내가 민성이를 씻기면, 그녀가 수건으로 아이를 닦는다. 내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그녀가 아이를 재운다.


저녁을 먹고 씻으면 8시쯤 된다. 그럼 그제야 그녀는 시간이 조금 난다. 하지만 그 시간도 오롯이 아내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 부부나 민성이 용품을 살펴보고 떨어진 게 있으면, 그때 인터넷으로 주문해놓는다.


그것까지 마치고 나서야 아내는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낮에 내가 찍어놓은 민성이 사진을 몇 장 보고는, '아 민성이 보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다 잠든다. 타임푸어인 그녀의 하루다.


난 휴직을 하고 힘들다고 투덜거릴 때가 많았다. 종일 애를 보는 건 힘든 게 맞다. 하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나는 애만 보느라 힘들고, 아내는 일도 하고 애도 보느라 힘들다. 상황은 다르지만, 분명 둘 다 고단하다.


그러니 배려가 필요하다. 힘들수록 더욱 그렇다. 어제(9일)도 아내는 낮에는 무릎이 닳도록 민성이와 놀아주다가 밤엔 아이 돌잔치 계획을 세우다 늦게 잠들었다. 시간에 쫓길수록, 짐을 나눠지자. 당장 내일부터, 나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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