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01일째, 민성이 D+350
애가 생겼다고 하면, 대부분 그럼 애는 누가 봐, 라고 묻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애가 생겼다고 하면, 자연스레 애는 어떻게 해, 라고 묻게 된다.
육아는 부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큼 큰 일인데, 집집마다 사정과 상황이 다르니, 그 집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체감상, 열에 일곱은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을 받았다. 확실히 반은 넘는다.
내 주변에도 꽤 있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기자들은 여전히 바쁘다. 국회를 출입할 때 다섯 기수 위 남자 선배가 있었다. 그는 항상 국회 부스에 제일 먼저 왔고, 회식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였다.
한 번은 같이 퇴근하는 길에, 애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선배 역시 그 경우였다. 장모님이 아파트 앞 동에 사신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내가 직장 상사라도 좋게 볼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엔, 어찌 이렇게 다들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내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니 샘통이 나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안 좋게 여기기도 했다. '부모님도 당신의 삶을 사셔야 하지 않나?'
하지만 애를 낳고, 잠깐이지만 부모님 근처에 살아보니 알게 됐다. 부모님은 대체 불가능한 대체 양육자다. 단언컨대, 부모만큼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조부모밖에 없을 것이다.
아내와 나도 군산에 와서 훨씬 여유가 생겼다. 어제(9일) 오전엔 민성이를 부모님 댁에 잠시 맡기고 아내와 영화를 보고 왔다. 부모님의 시간을 빌려, 부부의 시간에 채워 넣은 것이다.
어머니는 일하고, 아버지는 새 일을 준비하셔서 매일 봐주시진 못하지만, 그래도 종종 우리 집에 들러 민성이와 놀아주신다. 그때 나는 밀린 집안일도 하고 잠깐 눈도 붙인다. 매주 한가득 반찬을 해 가져다주시기도 한다.
부모님이 근처에 계시니 이렇게 편한데도, 그래도 그들이 당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부모님의 시간을 언제까지고 빌릴 순 없다. 언제 갚을지, 갚을 수는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