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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26. 2020

돌쟁이는 유모차가 싫어요

휴직 118일째, 민성이 D+367

'난 손만 있는 게 아냐. 입도 있지. 이제 이 텀블러는 내가 접수한다!' / 2020.08.25. 우리 집


너무 덥다. 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숨이 턱 막힌다. 유독 장마가 길었던 올여름, 잊고 지냈던 더위의 매운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 곧 태풍이 온다더니, 그래서 더 그런 걸까.


민성이는 보통 3시쯤 하원한다. 집에 와서 조금 놀다가 이유식을 먹고, 5시쯤 산책을 나간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1시간 미룬 게 그 시간이다. 하지만 5시의 햇살도 요즘은 녹록지 않다.


어제(25일)도 민성이를 데리고 그 시각에 집을 나섰다. 예전에 종일 아이를 볼 땐, 하루 한 번의 산책이 가뭄의 단비였다. 하지만 요즘은 산책 한 번 나가는 게 일이다. 


더위도 더위지만, 민성이가 예전과 달리 유모차에 앉아 있으려 하질 않는다. 처음 집에서 나설 땐 그래도 얌전한데, 중간에 잠시 내렸다 다시 유모차에 태우려고 하면, 울고 불다 아예 드러눕는다.


유모차에 앉히면 울고, 빼내면 웃는다. 놀이터 벤치나 미끄럼틀에 내려놓으면 손으로 나비의 날갯짓을 하며 기분이 최고조에 이른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꾸 놀이터 맨바닥을 향해 돌진한다는 거다. 


아무리 나라도 차마 그건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못 내려가게 하면, 그때부터 짜증이 한 바가지다. 아니, 그러면 얼른 걷든지. 평소엔 그래도 잘 달래서 유모차에 앉히는데, 날씨가 이러니 나도 쉽지 않다.


난 민성이가 더 어렸을 때부터 유모차를 '앞보기'로 태웠는데, 산책을 하다 보면 너무 조용해서 아이가 유모차에 탔다는 사실을 깜빡할 때도 있었다. 그때 민성이는 두리번거리느라 늘 정신이 없었다. 


이제는 점점 하고 싶은 게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손으로 만져보고, 먹어보고(?), 느껴보고 싶어 그런가 보다. 아내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녀는 말했다. "다른 돌잡이들도 유모차에 앉기 싫어한대."


아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면 지옥문이 열린다던데, 항상 아빠 품에 안겨서만 놀이터에서 놀아야 하는, 그래서 답답해하는 민성이를 보며, 그래도 원 없이 뛰어노는 게 좋을 텐데, 라고 철없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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