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19일째, 민성이 D+368
2019년 8월 26일, 오전 10시, 민성이가 우리에게 왔다. 하얀 담요에 폭 쌓인 아기는 사실 천사보다는 E.T를 더 닮았었다. 간호사가 담요를 걷어내자, 아이는 병원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그는 건강하고 씩씩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민성이는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생긴 건 E.T였을지 몰라도, 하는 짓은 단언컨대 천사였다. 생후 8개월은 아내가, 이후 4개월은 내가 아이를 돌봤다.
어제(26일) 새벽 5시, 주방이 시끄러워 잠에서 깼다. 문틈 사이로 미역 끓이는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아내의 생일에 내가 미역국을 끓여준 적은 있어도, 그 역은 잘 성립하지 않았다. 역시 남편보단 아들이다.
원래 오후 반차만 내려던 아내는 하루 통으로 휴가를 냈다. 그녀는 민성이에게 첫 미역국을 먹이고, 어린이집도 안 보낼 기세로 놀아주다가 오전 10시쯤 느지막하게 아이를 등원시켰다.
아내와 나는 곧바로 돌상 차리기에 돌입했다. 우리는 원래 다음 달 초, 서울 고급 호텔에서 가족과 막역한 지인들만 불러 나름 성대한 돌잔치를 열어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호텔 돌잔치는 뒤로 미뤘고, 생일 당일은 집에서 돌상만 차려주기로 했다. 아내가 인터넷에서 돌 용품을 주문했고, 떡과 과일은 가까운 곳에서 사 왔다. 꽤 그럴싸한 돌상이 차려졌다.
가까운 곳에 사는 민성이 할머니도 돌잔치를 보고 싶다고 해서, 그녀까지 모두 세 명의 하객이 잔치에 모였다. 최대 관문인 한복 입히기를 끝내고 나서 아이를 돌상 앞에 앉혔다.
새로운 것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애가 과연 돌상에 가만히 앉아있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차린 돌상인데! 단 한 장이라도 사진을 건져야 했다. 우리는 아이에게 뻥튀기를 쥐어주었다.
다행히 민성이는 얌전했다. 사실 일은 뻥튀기가 다 했다. 그리고 대망의 돌잡이 시간. 민성이는 뻥튀기를 내려놓고 가장 먼저 그걸 집어 들었다. 아이는 우리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