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117일째, 민성이 D+366
내일(26일)이면 민성이 돌이다. 그렇다. 나는 이제 명실상부한 '돌끝맘(?)'이 되었다. 내가 민성이 8개월에 휴직을 하고 아내와 바통터치를 했으니, 아이 인생의 3분의 1은 나에게도 지분이 있다.
돌 직전의 한 달, 역시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민성이 본적이기도 한 서울 집을 완전히 처분했고(진짜 안녕, 103호), 우리 가족이 자리 잡은 군산 집은 새로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바쁘다 바빠).
방 세 개짜리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우리는 그중 하나를 아이 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민성이를 그 방에 따로 재우기 시작했다(민성이 방에서 민성이 재우기). 다행히 민성이는 분리수면을 잘 받아들였다.
민성이 12개월 때의 가장 큰일이, 바로 아이를 따로 재우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아내와 나는 민성이를 재우고 난 뒤 안방에서 함께 영화를 볼 정도로 삶이 윤택해졌다(주말의 명화).
돌이 가까워지면서, 민성이와 처음 해보는 일이 늘었다. 첫 외식을 했고(아이와 첫 외식, 제 점수는요), 기저귀 교환대도 써봤다(이것이 기저귀 교환대인가). 아이의 처음을 함께 할 수 있는 건 분명 가슴 벅찬 일이었다.
또 하나의 기록적인 변화는 어린이집 등원이다. 운 좋게 아파트 단지의 국공립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 민성이는 8월부터 등원을 시작했다(민성이 어린이집 가요!). 민성이가 아빠에게 준, 휴직 100일 선물이다.
효자 민성이는 어린이집에서도 초고속 적응력을 보였다(민성이 등원 첫날), 탐색은 아주 잠시뿐, 그에게 아빠는 이미 없었다(아빠와 잘 떨어지는 아이). 등원 보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선생님을 보면 그렇게 웃을 수가 없다.
이번 달엔 유독 잔병치레도 많았다. 기저귀 발진에(장마가 아이 엉덩이에 미치는 영향), 변을 지나치게 많이 보는가 하면(변이 다섯 개!), 다래끼(민성이의 첫 다래끼)와 알레르기(알레르기 소동)도 앓았다.
잠잠하나 싶던 코로나가 재발했고, 민성이 돌잔치까지 여파가 이어졌다(코로나×돌잔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어린이집도 못 보낼 뻔했지만(코로나 나비효과), 아내와 상의 끝에 당분간 보내기로 했다.
12개월엔 민성이 환경에 변화가 많았다. 서울에서 군산으로 이사를 왔고, 잠을 따로 자기 시작했으며, 등원도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굵직한 변화였지만, 별 탈 없이 잘 적응해준 우리 아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