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Aug 24. 2020

벌초와 할머니

휴직 116일째, 민성이 D+365

'선생님, 이거 뭐예요? 만져봐도 돼요?' 너무 신이 나서 눈이 반달로 변한 강민성 어린이와 그의 새 친구 스펀지밥. / 2020.08.21. 어린이집


어제(23일)는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러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묘에 벌초를 다녀왔다. 서울에 있을 땐 멀리 산다는 핑계로 계속 피해 다녔는데, 군산에 내려오면서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됐다.


사실 벌초를 하러 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들 사는 게 바쁘고 힘들다면서도, 환갑을 바라보거나 이미 넘은 자녀들이 - 그리고 손주들이 - 매년 손수 벌초를 해야 한다는 게 내심 답답했다.


당장 7남 1녀 중 다섯째인 아버지만 해도 몇 해 전 환갑이 지났다. 자녀들이 조금씩 비용을 분담해 전문업체에 맡기면 서로 편하고, 벌초도 더 깔끔하게 될 텐데, 큰아버지들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그들은 완고했다.


아침 8시 반쯤 선산에 도착했다. 올여름 특히 길었던 장마 때문인지, 풀은 사람 허리 높이까지 자라 봉분이 어디 있는지 찾기도 어려웠다. 나보다 열댓 살 손위 형이 먼저 도착해, 풀과 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가 막 일을 시작할 때쯤 아버지 바로 위 큰아버지와 그의 아들도 도착했다. 남자 다섯이 모여, 예초기 세 대를 돌리니 벌초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제야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이 적힌 묘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내가 좀 더 컸을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지만, 할머니는 꽤 생생하다. 손주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할머니는 매번 진심으로 나를 반겼고 예뻐해 주셨다.


입대 전 여름, 대학 절친과 자전거 여행을 하다 예고 없이 할머니 댁을 들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옆집 할머니와 참외를 깎아 드시고 계셨는데, 대문 앞에 서 있는 날 보곤 참 해맑게 웃으셨다.


그날, 할머니는 옆집 할머니에게 나를 '서울대 다니는 내 손주 놈이여'라고 소개했는데,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그냥 서울(에 있는) 대학이었다. 옆에서 그걸 듣고 있던 내 대학 절친은, 나를 사기꾼 보듯 쳐다봤다. 


한 시간여, 예초기를 따라 갈퀴질을 하는데 갑자기 그때 그 할머니의 미소가 떠올랐다. 손주인 나도 할머니에 대한 향수가 있는데,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은 오죽할까. 벌초는 벌초 이상이었던 것이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묵묵히 예초기를 돌리는 할머니의 자식들을 보면서 벌초를 고집하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그렇게라도 부모님을 떠올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훗날, 어쩌면 나도 그럴지 모르겠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 저 이제 직립할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