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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Aug 01. 2020

주말의 명화

휴직 93일째, 민성이 D+342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간만에 아내가 건진 사진 2장. 실물보다 잘 생기게 나왔네, 아들? / 2020.07.31. 우리 집


아내와 나는 영화를 즐겨본다. 아니, 즐겨'봤'다. 민성이를 낳기 전엔 매주 한 번, 못해도 격주에 한 번은 영화관에 갔다. 영화에 특별한 조예가 있어 그런 건 아니었다. 데이트 상상력이 빈곤해서,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애 있는 집 대부분이 그러하듯, 민성이를 낳고 나선 영화를 즐겨볼 수 없었다. 장모님이 상경하셨을 때, 딱 한 번 아내와 둘이 영화관에 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민성이가 꽤 잘 자게 되고나서부터는, 아내와 밤에 컴퓨터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다만 어렸을 때 부모님 몰래 컴퓨터 게임을 하듯, 우리는 '그'를 피해, 거실 컴퓨터 앞에 도둑고양이처럼 앉아 영화를 훔쳐봐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영화관만큼 쾌적하진 않았지만, 우리 부부가 다시 나란히 앉아 예전처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큰 감동이었다. 물론 영화에서 총격전이 벌어질 때마다, 볼륨을 줄이느라 정신없긴 했지만.


군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우리는 거실에 있던 컴퓨터를 안방에 들였다. 이사하는 날, 침대 맞은편 서랍장 위에 컴퓨터를 올려놓으면서, 침대에 앉아 영화를 보면 딱이겠다,라고 아내와 얘기했었다.


드디어 어제(31일), 7월의 마지막 날이자 군산에서 맞는 첫 주말, 우리는 민성이를 재우고 영화를 봤다. 주말의 명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로 골랐다.


악당이 나오는 복수극. 요즘 계속 이런 게 끌린다. 문득 내가 무의식 중에 마음속에 악당을 두고 있는 건가, 혹시 그 악당이 우리 집 작은 생명체이고, 나는 그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가, 란 생각이 잠깐 스쳤다.


하지만 우리 집 작은 악당은 아내와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잤다. 그것도 다른 방에서(민성이 방에서 민성이 재우기). 이제 돌도 안 된 아기가 저렇게 자는 건, 초짜 부모인 우리에겐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였다.


영화는 재밌었다. 요즘은 한 달에 만 원 조금 넘는 돈으로 집에서 원하는 영화를 실컷 볼 수 있는 데다 취향에 맞춰 추천도 해준다. 참 좋은 세상이다. 다음 주말의 명화는 뭘 고를까. 벌써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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