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87일째, 민성이 D+336
눈을 뜨니 아무도 없었다. 아내도, 민성이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났던 게 언제였더라. 103호에서의 '진짜' 마지막 밤은, 그렇게 내 독차지가 되었다(이사 전야).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은 오전 7시 반쯤 오신다고 했다. 긴 하루를 대비해, 커피를 홀짝이고 있으니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제 조금 실감이 났다. 아, 내가 진짜 이 집을 떠나는구나.
이삿짐이 빠지는 건 순간이었다. 짐이 없는 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금방 집이 비워질지는 몰랐다. 3시간 정도 걸렸을까?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다만 한 가지, 나는 군산에 다시 내려갈 때, 이삿짐 트럭을 타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차엔 직원 네 분이 타기도 버겁다고 하셨다. 하릴없이, 나는 또 터미널로 발길을 돌렸다. 아주 그냥 버스 복이 터졌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급히 우동을 뱃속에 욱여넣고, 오후 2시가 좀 안돼서 군산에 도착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나, 군산 부모님 집에 있던 아내와 엄마까지, 다 같은 시간에 이사할 집에 모였다.
짐을 채워 넣는 건, 빼내는 것보다 더 빨랐다. 조금씩 집의 진용이 갖춰졌다. 이사한 김에 민성이에 맞춰 집에 변화를 줬다. 거실 정면엔 TV장 대신 책장을, 방 하나엔 민성이 침대를 뒀다(아이와 미니멀 라이프, 가능할까?).
이삿짐센터에선 단순히 가구만 배치해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짐까지, 그것도 있었던 위치 그대로 채워주었다. 그래서 정리 부담이 한결 줄었다. 우리는 오늘(26일) 당장 민성이를 새 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오후 내내, 민성이는 할아버지가 돌봤다. 그러니 오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빠인 셈이다. 그는 졸지에 '라테 그랜파'가 됐다. 애를 10분 보는 것과 10시간 보는 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이제 그랜파도 잘 알았을 것이다.
새 집, 나의 육아휴직 전초기지가 될 이 곳은 301호다. 그러고 보니 103호와도 비슷하다(안녕, 103호). 그곳에서의 1년 반, 새롭게 쌓여갈 민성이와의 추억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