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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18. 2020

안녕, 103호

휴직 79일째, 민성이 D+328

지난해, 조리원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103호에서. 지금 보니 용 됐네, 우리 아들? / 2019.9.17 우리 집


난 일찍이 자취를 했다. 대학 때 처음 상경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 1년을 빼고, 졸업할 때까지 학교 앞 반지하 전셋집에서 지냈다. 4살 터울 남동생과 같이 살 때도 있었지만, 엇갈릴 때도 많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 꺼진 집에 들어가 불을 켜고,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뒤적이다 억지로 눈을 감는, 그런 게 특히 싫었다. 그래서 난 결혼이 빨리 하고 싶었다.


취업을 하고, 인생 첫 대출을 받아 회사 근처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반지하에서 3층으로, 방도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2년 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지금 이 집, 103호에 들어왔다.


오래된 아파트를 사서 아내와 내 입맛에 맞게 꾸며 살았다. 1층이었지만 창 밖에 조그만 공터가 있어 답답하지 않았다. 창 밖의 나뭇잎 색이 바뀔 때마다 우리 부부의 추억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결혼식이 끝나고는 아내와 집 근처 중국집에 갔다. 홀가분하게 식을 치렀고, 다음날 우리는 이태리행 비행기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날 먹은 짬뽕맛이 잊히질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103호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한 것도, 그래서 우리 둘 다 환호했던 것도 이 집에서였다. 이 곳에 온 지 3년 반, 계절이 14번 정도 바뀌었을 때 민성이가 태어났다. 지금 103호는 그의 놀이터가 되었다. 


오늘(17일), 우리 가족은 군산에 간다. 그곳에 있는 동안 이 집이 팔리지 않으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2년 가까이니,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사실상 어제가 103호에서 마지막 밤이었다.


뭐든 처음은 잘 잊히지 않는다. 103호는 우리의 신혼집이었고, 무엇보다 민성이를 낳게 해 준 고마운 집이다. 여기는 민성이의 본적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이제 우리는 떠난다. 이 집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면, 그들에게도 좋은 일만 일어나면 좋겠다. 혹 아이를 바라는 신혼부부라면, 민성이처럼 착하고 귀여운 아이가 생기면 좋겠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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