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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l 25. 2020

이사 전야

휴직 86일째, 민성이 D+335

진지하게 국자의 쓰임새를 연구 중인 요리왕 강비룡 선생. / 2020.07.23. 군산 부모님 집


딱 일주일 만에 다시 서울에 왔다.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이 어련히 잘해주시겠지만, 그래도 집주인이 한 명은 있어야 할 것 같아, 내가 올라왔다. 오늘(25일) 우리는 이 집, 103호를 떠난다. 


원래는 민성이 세 번째 이유식까지만 먹이고, 오후 3시쯤 부모님께 아이를 맡긴 뒤 일찌감치 상경하려 했다. 하지만 10년 지기 아내에게 간파당했다. 그렇다. 나는 일찍 올라올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녀는 귀신이다.


퇴근한 아내를 데리고 와서 민성이 목욕까지 시키고 나서야,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올라오는 내내 신나게 핸드폰을 가지고 놀려고 했지만, 금방 잠이 들었다. 군산 부모님 집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더 고단했다.


지난 일주일, 민성이는 가면 안 되는 곳만 골라 가서, 만지면 안 되는 것만 골라 만졌다. 애 키우는 집과 달리 부모님 집엔 울타리가 없으니, 100% 인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이삿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이유다.


현관문을 열자 제일 먼저 민성이 유모차가 나를 반겼다. 우리 집엔 큰 유모차와 휴대용 작은 유모차가 있는데, 군산에는 급한 대로 작은 것만 챙겨갔었다. 군산에서 민성이를 데리고 몇 번 산책할 때, 저 유모차가 그리웠다.


거실에는 민성이 장난감이 일렬로 잘 정돈돼있었다. 우리가 떠날 때 모습 그대로다. 내가 저 아이들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장담컨대, 민성이보다 내가 더 이들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오늘 오후면 이 모든 것들을 군산 집에 가져다 놓을 수 있다. 군산 집은 이미 며칠 전부터 비어있었다. 입주 청소도 해뒀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사만 남았다.


우리 가족은 2022년, 그러니까 내후년 봄에 다시 서울에 돌아온다. 그때 민성이는 두 돌을 지나 세돌을 향해 커가고 있을 테고, 나는 복직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복직이라니, 벌써부터 일하던 삶이 가물가물하다.


서울에서 민성이와 우리 부부의 새 보금자리가 어디가 될 진 모르겠다. 아내는 그것 때문에 벌써부터 머리가 깨질 것 같단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이 집에서처럼 좋은 일만 많이 일어나는, 그런 행복한 집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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