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85일째, 민성이 D+334
드디어 내일(25일), 우리는 군산 새 집으로 이사한다. 아내의 지역 발령으로, 우리 가족은 지난 주말 급히 군산에 내려왔고, 일주일째 - 우리가 구한 집이 빌 때까지 - 부모님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군산의 민성이).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건 감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엔 우리 부부 못지않게 민성이를 사랑해주는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 또한 할머니의 음식은 우리 세 가족을 살 찌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군산에 내려올 때, 우리는 민성이와 우리 부부의 짐을 차에 딱 실을 수 있는 만큼만 가지고 왔으므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빼고는 사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물품만으로 따지자면, 피난민 캠프 수준이었다.
어제(23일) 민성이를 재운 뒤, 아내와 이사 갈 집 사전 답사에 나섰다. 이사가 코앞이니, 미리 가구 배치를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빈 집을 둘러보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가구를 어디에 둘 지, 아내와 한참을 얘기했다.
애를 키우면서 느낀 건, 애를 키우는 집엔 물건이 최대한 없는 게 좋다는 거다. 어른이 쓰는 물건은 아이에겐 대부분 필요가 없다. 아이는 어른이 쓰는 물건을 어른이 쓰는 대로 쓰는 법이 없으므로, 위험할 때가 많다.
새 집의 모토는, 그래서 최대한 비우자는 거였다. 우리 부부는 민성이를 낳기 전엔 나름 '미니멀 라이프'족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역시 아이가 생기니 미니멀은 쉽지 않았다. 민성이의 물건을 버리는 건 훨씬 더 어려웠다.
우리는 민성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거실부터 단순하게 꾸미기로 했다. TV는 원래 없었으니, 거실 한쪽 면엔 책장을 세우고, 반대 면에 있던 소파는 아예 버리기로 했다. 그럼 거실은 오롯이 민성이 차지가 된다.
새 집에선 민성이 침실도 만들어주려고 한다. 민성이는 9개월부터 부분적으로 분리 수면을 해왔는데(아빠가 없으니 잠만 잘 자더라), 이사하는 김에 아예 다른 방에서 완전한 분리 수면을 시작해보려는 거다.
103호는 아내와 나, 신혼부부에 맞춘 집이었다. 그러다 민성이가 태어났고, 그의 물건이 나중에 거기에 덧대졌다. 아이를 키우는 신혼집이었던 건데, 여러모로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처음부터 민성이를 고려해 집을 꾸밀 수 있다. 앞으로 어느 집을 가든, 적어도 3분의 1은 아이 지분이다. 민성이의 생활패턴과 동선을 고려한 집은 애를 보는 나에게도 편할 것이다. 아, 빨리 이사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