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75일째, 민성이 D+324
드디어 아내의 지역 근무지가 결정됐다. 우리는 전북 군산으로 간다. 처음부터 우리 부부가 희망했던 곳이다. 그곳엔 내 부모님, 그러니까 민성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 그렇다. 나는 '엄빠 찬스'를 쓸 요량이다.
난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이후 나는 서울로, 부모님은 몇 군데를 거쳐 군산에 자리를 잡으셨다. 근처 익산이나 전주 발령만 해도 어디냐 했는데, 하늘이 내 육아휴직을 도왔다.
아내는 지역 어딘가는 갔다 와야 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한 것도, 아내를 따라가기 위한 게 컸다. 이왕이면 부모님 있는 곳이 낫겠다 싶어 군산을 지원했는데, 다행히 그리로 결정된 것이다. 육아휴직 '시즌2' 시작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1년 이상 머물러야 한다. 발표는 어제(13일) 났는데, 아내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그곳으로 출근해야 한단다. 이번 주는 이사 준비에 숨 가쁜 한 주가 될 것 같다. 당장 집부터 구해야 한다.
할 게 산더미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게 돼 다행이다. 발표일이 다가올수록, 아내와 나는 마음을 졸였다. 서울엔 친구라도 있지, 연고 없는 곳에서 민성이를 혼자 보게 됐더라면, 난 많이 우울했을 것이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엄마는 몇 주전부터 민성이 맞을 준비를 했다. 집에 정수기를 새로 들이고, 가스레인지는 인덕션으로 바꿨다고 했다. 우리가 함께(혹은 근처에) 살게 된 것도 거의 20년 만이니, 엄마도 설렜을 것이다.
우리가 그곳을 택한 건, 아빠의 육아 편의를 위한 게 크지만, 민성이도 (조금) 고려했다. 엄마 아빠만큼이나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있는 건, 아이에게도 좋을 것이다.
군산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민성이를 데리고 부모님과 종종 교외에도 나가려고 한다. 아내와 나는 한숨 돌릴 수 있어 좋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 재롱을 볼 수 있어 좋다.
앞으로 내가, 우리 가족이 부모님 곁에서 지낼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가 또 지역에 내려갈 일도,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실 가능성도 적다. 어쩌면 앞으로 1년이, 내 인생의 가장 풍족한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