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74일째, 민성이 D+323
어제(12일) 처음 민성이를 데리고 한강공원에 갔다. 아내를 만나기 전엔 나 혼자, 민성이를 낳기 전엔 아내와 함께 이곳에 자주 왔었다. 서울엔 좋은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난 한강을 항상 우선순위에 둔다.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했다. 그 전엔 서울에 와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신입생 땐 매일 술 마시느라 캠퍼스 근방에서만 머물러 몰랐는데, 알고 보니 학교 바로 뒤에 한강이 있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에 한강이 놓였다.
제대 후 새 자취집은 한강과 더 가까웠다. 운동삼아 가끔 한강변을 달렸다. 흑석동에서 여의도까지 왕복 1시간이 걸렸다. 그때는 몰랐다. 달리기의 반환점, 여의도 한강변에 보이던 그 방송국에 내가 다니게 될 줄은.
아내를 만난 뒤에도 한강에 자주 왔다. 연애 초였나, 아직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던 시절, 그녀와 얘기를 나누며, 한강변을 걷고 또 걸었던 적이 있다.
그녀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걷고 또 걷다, 경기도까지 진군할 기세였다. 나중에 아내는 그게 일종의 인내심 테스트 같은 거였다고 했다. 그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더라면 민성이도 없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그것도 전에는 없던 아들과 함께 찾은 한강공원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은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지만, 그곳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즐거워 보였다.
한 시간 남짓 우리는 한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내와 나는 민성이를 유모차에 앉히고, 예전에 먹었던 즉석 라면을 또 끓여먹었다. 집에선 더 편하게 끓여먹을 수 있는데, 왜 거기서 먹는 라면이 항상 더 맛있을까.
잔디밭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민성이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민성이는 예상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름 넉넉한 사이즈를 샀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호기심을 가둬두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힘도 세진 녀석을 아내와 번갈아 돗자리 밖으로 못 나가게 막다가, 진이 빠져 돌아왔다. 그래도 즐거웠다. 아내의 지역 발령이 끝나고, 가족이 다시 서울에 오면 한강부터 찾아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