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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29. 2020

아빠가 없으니 잠만 잘 자더라

휴직 29일째, 민성이 D+278

기어이 소파에 오른 그는 로션통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역시 로션은 먹어야 제 맛이지.' / 2020.05.28. 우리 집


애 보는 집은 한 번쯤 읽어봤을 '똑게육아'를 다시 꺼내들었다. 아내와 조리원에 있을 때 드문드문 들여다보긴 했는데, 완독은 처음이었다. 육아를 전담하는 입장에서 책을 보니, 한줄 한줄이 눈에 쏙 들어왔다.


특히 와닿았던 건, 글쓴이가 둘째를 키우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는, 그래서 독자들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면 좋겠다며 전수한 육아 노하우다. 둘째가 없을지 모를 내겐 더없이 유용한 내용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책에서 첫째를 '지나치게' 애지중지 키웠다고 회고했다. 엄마의 모든 시간과 체력을 아이에게 쏟아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녀와 아이를 모두 지치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째를 키울 땐 책 제목대로 '똑똑하고 게으르게' 육아에 임했고, 그것이 가족 모두에게 이로웠다고 전했다. 이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그래, 나의 자립형(혹은 방치형) 육아가 나쁜 게 아니었어.


난 가급적 아이 혼자 놀게 하고, 매번 안아주지도 않는, 상당히 불성실한 아빠라고 고백한 바 있다(아이만 행복하면, 진짜 괜찮은 걸까?). 그것이 불성실이 아니라는 데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또다른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민성이는 하루 두세번 낮잠을 잔다. 아이가 졸려하면 침실로 데려가 쪽쪽이를 물리고, 잠친구인 토끼 인형 옆에 눕힌다. 나는 민성이 매트 옆 침대에서 그가 잠들 때까지 대기한다. 그게 지금까지 방식이었다.


사실 내가 근처에 있으면, 아이가 자는데 득보단 독이 될 때가 많다. 침대로 피신했다지만, 어차피 매트를 잡고 서는 민성이의 시야 안이다. 그럼에도 구태여 방에 있었던 건 의무감 혹은 죄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잘 때 내가 어디 외출하는 게 아니다. 3센티 두께의 문 밖에 잠시 앉아있을 뿐이다. 언제든 아이가 날 찾으면 1초 만에 다가가 안아줄 수 있고, 자고나서도 계속 함께다. 똑게에서도 그렇게 제안한다.


가설은 적중했다. 문 너머에서 '끙' 거리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만 혼자서도 잔다. 잠들기 전, 한두번 잠깐 들어가 토닥여준 게 다다. 덕분에 난 없던 시간이 생겼다. 빡빡하기만 하던 육아에서 잠시 쏠쏠한 재미를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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