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9일째, 민성이 D+258
민성이가 앉기 시작했다. 휴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악어처럼 기기만 했던 그였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으로 바닥이나 물건을 짚고, 다리를 'M'자 형태로 구부리고 앉는다. 흡사 미어캣 같기도, 세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거실 매트 위에 앉아있으면, 민성이도 내 다리 위에 두 손을 짚고 앉는다. 요즘엔 앉는 걸 넘어 일어서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날 올려다보는데, 환하게 웃기까지 한다. 사람 미친다.
너도나도 행복을 말하지만, 사실 행복은 꽤 추상적이다. 기분이 좋은 거?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마셔도 기분이 좋고, 그래서 '즐겁다'곤 하지만, '행복하다'라고 까진 말하지 않는다.
행복은, 내게도 그런 막연한 단어였다. 그러다 민성이를 만났다. 내 무릎 위에 손을 얹은 채 엉덩이를 들고, 날 향해 아낌없이 웃어주는 민성이를 보면, '아 이런 느낌일까'란 생각이 든다.
반면 아비는 그런 민성이에 비해, 상당히 불성실하다. 민성이가 눈으로 '안아줘, 아빠'라고 말할 때도, 난 매번 안아주진 않는다. 민성이랑 놀아줘야 할 것 같을 때도 가급적 혼자 놀게 하고, 내 할 일을 한다.
민성이는 분명 내가 안아주면 안정을 느끼는 듯하고, 나랑 놀 때 더 즐거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민성이가 깨어있는 하루의 반, 번번이 안아주고 놀아주면 내가 너무 힘들다. 지치지 않아야, 진짜 필요할 때 힘을 쓸 수 있다.
육아휴직 2년, 730일 중 9일이 지났다. 진도로 따지면 1% 정도다. 초반에 전력 질주하면 이 대장정을 완주할 수 없을 거다. 그런 생각으로 민성이의 행복 못지않게 내 행복도 챙기며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
난 아빠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빠인 내가 불행하면 아이도 불행해진다는 믿음이다. 부모는 몸과 정신이 무너지고 있는데 아이만 행복한다는 건, 건강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민성이는 곧 일어설 거다. 걸음마를 할 테고, 말도 할 거다. 학교에 가고 애인을 만나 가정도 꾸릴 거다. 그의 행복을 옆에서 오래 지켜보려면, 나와 아내도 함께 행복해야 한다. 그게 지속 가능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