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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May 22. 2020

'안돼'라고 하지 않기

휴직 22일째, 민성이 D+271

너무 PPL 같은 사진이라 고민했지만, 너무 귀여워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헬멧 사이사이 삐져나온 머리카락 몇 올이 포인트. / 2020.05.21. 우리 집

난 민성이를 보면서,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건 웬만하면 하게 해주자' 주의다. 9개월짜리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건, 대부분 어딘가로 기어가고, 무언가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건데, 가급적 말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 번은 민성이가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통 밖으로 삐져나온 종량제 봉투 손잡이를 할짝댄 적이 있다. 나는 옳거니 하며 동영상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부인, 우리 집에 도둑고양이가 들었어."


그날 아내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아이가 저러고 있으면 말려야지, 신나서 찍고 있느냐고 혼쭐이 났다. 그녀는 아이가 저런 걸 입에 가져가면 장염 같은 거에 걸리기 쉽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변명을 하자면, 나도 민성이가 쓰레기 '봉투'가 아닌 쓰레기를 집으려 했다면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민성이가 할짝대던 비닐봉지 손잡이는, 어쩌면 그를 매일 어루만지는 내 손보다 깨끗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게 어렵다. 사실 어른의 기준에서 보자면, 아이가 하는 일은 안 되는 것 투성이다. 눈에 새로 보이는 건 뭐든 달라고 떼쓰고, 주는 족족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이다. 무엇은 주고, 무엇은 주지 않을 것인가.


그러니까 평소에 뭐든 광이 나게 닦아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민성이가 뭘 달라고 해도 걱정이 덜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쓰레기봉투 손잡이까지 닦진 못하겠다.


난 민성이가 놀 때, 옆에서 책을 읽을 때가 많다. 민성이는 당연히 책을 달라 조르고, 나는 책을 건넨다. 그는 먼지 등이 묻은, 꽤 꼬질꼬질한 책을 신나게 물고 빤다. 그럼 나는 그 옆에 놔둔 또 다른 책을 편다. 그런 식이다.


책을 안 주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민성이는 포기하지 않았고, 나도 명분이 없었다. 민성이 입장에서야, 그럼 왜 눈 앞에 꺼내놓았느냐고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눈과 손이 닿는 곳에 위치한 물건을 가질 권리가 있다.


나는 아이가 다소 위험하고, 너무나도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하더라도, '안돼'라고 하지 않는 게 이 시기엔 이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꼭 안될 것도 없는 일들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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