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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성이 아빠 Jun 05. 2020

휴직, 말하기까지가 어려울 뿐

휴직 36일째, 민성이 D+285

'흠, 저게 분수라는 건가' 나와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그에겐 태어나서 처음이다. / 2020.06.03. 근처 아파트 단지


어제(4일)만 10만 명 넘는 사람이 내 브런치 글(낮잠의 신세계)을 읽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매일, 전날까지 글 34편을 썼는데 그걸 모두 합한 것보다 배 이상 많은 것이다.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린 하루였다.


아마 글보다는 사진 때문이었을 것이다. 휴직에 임하는 30대 아빠의 고민, 엄마 복직 첫날의 풍경 모두 필요 없었다. 그가 엎드려 자는 사진 하나가 앞선 모든 글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읽힐 줄은 몰랐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10만 명 중엔 육아휴직을 고민 중인 누군가의 아빠도 있겠지. 그들은 민성이가 낮잠을 2시간 자게 됐다는 소식보단, 휴직을 결정하고 실행하는데 도움이 될 글을 찾아왔을 것이다.


아빠가, 그리고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는 게 좋을 것인가, 이 부분은 이견이 크지 않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게 가족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좋은 건 알겠는데 쓸 수 있느냐는 고민일 테다.


이미 밝혔듯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아빠 육아휴직, 2년의 기록). 회사가 휴직을 보장해줬고, 가정 경제상 가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와 같거나 혹은 나은 상황인데도 모두가 휴직을 쓰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한 일인데도, 나도 정작 부장 앞에선 휴직하겠다고 말하기 쉽지 않았다.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것만 같았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휴직이 낯설지 않은 조직에서조차 입을 뗄 용기가 필요했다.


정말 도저히 휴직을 쓸 수 없는 상황인 건지, 아니면 내 확신이나 용기가 덜 여문건 지는 고민 해봐야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선 아빠가 상사에게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할 때, 엄마보다 더 큰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만 휴직을 쓰더라도, 조직과 동료를 배려할 필요는 있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왕이면 일찍 말해 미리 준비하는 게, 그리고 가능하면 조직의 인사철에 맞춰 빠지는 게 서로에게 좋다. 나는 그렇게 했다.


돌이켜보면, 휴직하겠다고 말하기까지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일단 입을 떼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회사는 우리가 없어져도 아주 잘 돌아간다.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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